[6월의 칼럼] 고골리 아저씨 |김연경|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는 누구인가?”
이것은 ‘러시아문학사’ 나 ‘러시아명작의 이해’ 와 같은 학과목의 시험 문항이 아니라, 유학 시절 기숙사의 전기 수리공이었던 빅토르 아저씨가 걸핏하면 던지는 물음이었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사생들의 방을 방문하면 아저씨는 곧잘 러시아 문학에 관한 ‘시험’을 보곤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의 이름이 나왔다. 아저씨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저씨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정답을 유도하기 위해 애썼다. “우크라이나 출신이야” “코의 모양이 좀 독특했지”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더러 있지” “말년에는 작품 세계가 완전히 종교적으로 변했는데” 등. 이리하여 마침내 ‘고골리’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면 아저씨는 이제 고골리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주문했다. 엉터리 정보나 마뜩치 않은 얘기를 늘어놓으면 고골리의 주인공들처럼 코를 만져가면서 아이들의 형편없는 교양을 비판하는 것이 또한 아저씨의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에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문 앞에서 여러 직원들이 리듬과 화음을 넣어가면서 목청껏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하늘을 향해 하얀 옷을 흔들고 있었다. “고골리 못 봤어?” “도대체 어딜 간 거야?” “고골리!” “고골리 이 양반, 전기 고치다가 벼락 맞아 죽은 거 아냐?” ‘고골리’라는 성은 현대 러시아인들에게서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특이한 것이어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응당, 이미 백오십여 년 전에 사망한 작가 니콜라이 고골리였다. 그러니 화창한 봄날 기숙사 주위에서 일어난 한판 소동은 요사스러운 초혼 같기만 했다.
바로 이때 멀리서 짜리몽땅한 중년의 남자가 불룩한 배를 철렁거리면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빅토르 아저씨였다. 순간, 자못 비장하고 신비스러웠던 고골리 찾기는 극히 산문적이고 일상적인 장면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저씨의 성이 고골리였던 것이다! 고골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사생아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저씨가 그의 직계 자손일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후손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고골리에 대한 아저씨의 집착은 위대한 문학가를 배출한 고골리 집안의 후예로서의 개인적인 자부심, 나아가 ‘문학’ 자체에 대한 존경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러시아 사람들의 일반적인 문화 수준이 유별나게 높은 것은 아니다. 문학이란 시대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문화권이냐를 막론하고 어차피 정치나 경제 따위에 비해 문화의 가두리만을 차지하는 것이다. 소위 ‘문학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이미 어떤 가치론적 평가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객관적인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에 빅토르 아저씨처럼 우리 문학의 ‘고골리’에 대한 돈키호테적인 집착을 갖고 있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인가.
(2005.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