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나의 여섯번째 발가락 |심진경|

몇 해 전에 여성문학 연구자들 몇몇과 프로이트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억압된 성적 욕망과 무의식,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공부하다보니 간혹,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주,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여자들, 특히 배운 여자들의 성적 판타지나 성적 욕망 등에 관한 수다를 떠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을 때 우리들의 이런 수다는 극에 달했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전날 꾼 꿈의 내용을 얘기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되도 않는 분석들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꿈을 자주 분석(?)하다보니 나중에는 분석의 도식에 들어맞는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젖은 숲으로 들어갔어.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숲길을 신나게 달리는데 길옆의 호수에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마구 뛰어올랐어. 자전거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페달을 밟는 나의 발길도 분주해졌지. 그러면서 점점 묘한 쾌감을 느끼겠더라구.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바로 그 순간, 김대중 대통령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한 팔을 뻗으면서 ‘스톱’ 하는 거야. 놀래서 끽 하면서 자전거를 세웠지.”
‘젖은 숲’, ‘잉어’로 상징되는 성적 상황과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초자아의 검열이라니…. 우리는 그때 역시 배운 여자들은 이런 도식에서 못 벗어난다고 서로를 놀리면서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서글펐다. 온갖 현란한 이론으로 중무장해도 역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페미니즘 연구자들이 성적 해방이니 쾌락의 추구니 떠들어도 정작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한 경우가 많다. 배운 만큼 실천하기보다는 배운 만큼 두려워하는 것이다.
짐작건대 그것은 처벌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에게 그런 자기 검열과 자기 통제는 ‘의외로’ 심하다.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의외로 그렇다. 시대착오적 성차별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우리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의 자의식 과잉을 부추기는 동시에, 언제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협박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김명순이나 나혜석과 같은 여성작가들의 비극적 결말에 분노하면서도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그런 두려움은 ‘의식적으로’ 간신히 노력해야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일 터이다.
나는 간혹 나의 새끼발가락 옆에 발가락 하나가 더 생기는 꿈을 꾼다. 나는 여분의 그 발가락이 너무 사랑스럽지만 꿈에서 그것은 언제나 잘린다. 그러나 곧 그 자리에 다시 발가락이 돋는다. 그러나 나는 곧 도끼로 그 발가락을 자른다. 다시 자란다. 다시 자른다. 자란다, 자른다. 이 끝없는 악무한. 나는 언제쯤 나의 사랑스런 여섯 번째 발가락을 자르지 않게 될까. 잘려나간 무수한 나의 여섯 번째 발가락들이 이 순간 나의 온 몸에서 돋아나는 것 같다.
(200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