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지하철에 관한, 지하철을 위한, 지하철에서의 단상 |이상희|

맞은편에서 수녀님 두 분이 웃고 있다. 키득키득-. 제복 속에 감춘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지만, 눈으로 보기에 그럴 뿐 소리는 나지 않는다. 스피커 장치를 끈 동영상이라고나 할까. ‘아아, 그렇게 웃게 되어 있는 거군요!’ 하고 감탄하는 나. 감탄하는 김에 무례를 무릅쓰고 살금살금 쳐다본다. 왼쪽 수녀님을 볼 때와 달리 오른쪽 수녀님은 약간의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전라도 억양이 심한 아주머니가 명동 가는 노선이 맞는지 묻고 있다. 주위의 승객이 대답한다. 끄덕끄덕. 아주머니는 물론 아이 둘과 남편으로 보이는 동행인들은 그런 대답을 해독할 수 없다는 듯 출입문 위쪽의 노선도를 열심히 쳐다보다가 또 다른 승객을 향해 묻는다. 이번엔 끄덕끄덕도 없다. 잠잠…… 끄덕끄덕 때부터 어딘가가 간질거리기 시작하던 나. 벌떡 일어서고 만다. 노선표의 파란 선을 따라 하나씩하나씩 까만 점을 짚어준다. 그제야 네 식구가 자리에 앉는다.
꽃다발을 안고 지하철을 탔을 때의 불만. 책을 읽을 수 없다. 가방 속에 든 재미난 읽을거리를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 전까지의 득의양양이 시무룩이 고개를 떨군다. 꽃집 앞을 지나간 게 실수다. 늘 딱한 형편에 꽤나 절약가인 척하는 나. 꽃, 수첩, 책 앞에선 즐겨 털린다. 커다란 ‘실수’ 한 다발을 안고 옆 승객이 읽는 신문으로 염치없는 고개가 돌아간다.
언제부터인가 글로 쓰지도 않고, 따라서 보내지도 않는 편지를 쓰곤 한다. 속으로 중얼거리되 편지 형식을 띤 이상한 방백. 조카 R을 닮은 오른쪽 수녀님을 기웃거리면서, 지그시 통증을 누르면서, R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잘 지내고 있지? 말세처럼 끈적이던 여름이 떠나갔나 봐. 오늘 바람은 아주 소슬해. 선득선득 차갑기까지 하다. 나도, 네 아빠도, 받지 않는 네 전화에 지친 것 같애. 목소리조차 오래 못 듣게 되면 실체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지, 사실 지금 내게는 너보다 네 맨발이 더 또렷해. R아. 외할머니 장례식에 느닷없이 나타난 너. 언제 소식을 끊었더냐는 듯, 잠깐 화장실 다녀온 듯, 손님맞이며 심부름을 해내던 너. 온갖 꾸지람과 걱정 잔소리 야유에도 싱긋 웃고만 있던 너. 잠든 얼굴은 내가 토닥여주던 어린 아이 때 얼굴 그대로이던 너. 이제는 오래 오래 아빠 곁에서 지낼 것처럼 보이던 너. 그런데 내일 발인을 앞두고 갑자기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던 너. 네 아빠가 일부러 감춘 건지, 누가 바꿔 신고 간 건지 샌들이 없어지자 맨발에 화장실용 슬리퍼를 신고 나가던 너. 그러고는 3년여 가까이 또 소식이 끊긴 너. 어디서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며 잘 지내리라 믿는다. 안녕.
커다란 박스 하나를 질질 끌고 들어오는 아저씨. 품목이 무엇이고 얼마나 팔게 될까, 목소리는 또 얼마나 터무니없이 멋질까를 점치는 나. 그러나 형편없다. 전혀 훈련되지 않은 채 사투리가 심한, 수줍음과 열패감이 뒤섞인 조악한 목소리. “크기가 여러 가지예요. 일회용 밴드가 100장 1세트에 1000원입니다. 가정에나 직장에, 공장에 갖다놓고 쓰세요. 돈 버시는 겁니다”라는 재치라곤 없는 급조 멘트. 그냥 한번 그래봤다는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 바퀴 휭하니 돌고는 제 키만한 큰 박스를 다시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이 오늘 신장개업한 아마추어임에 틀림없다. 앵커맨 뺨치게 기름진 목소리로 전 승객을 사로잡던 프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밀실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지하철만 타면 숨이 막혀 쩔쩔매던 나. 지하철 없는 지역으로 떠나 산 지 얼추 4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한 달에 서너 번꼴로 서울 나들이를 하면 이 최선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20년 넘게 버텼던 이 공룡도시에서 이제는 답답증보다도 지하철 역사 내 갖가지 사인과 기호와 표지 때문에 쩔쩔맨다. 아까 그 남도 아주머니 일행처럼 제대로 타고도 잘못 탔을까 불안해하고, ‘갈아타는 곳’을 찾지 못해 승강장을 뱅글뱅글 돌고, 지하철이 나를 따돌린다고 믿는다.
(2005.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