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저 가지에 흰 천들이 걸려 있다 |김태동|

사방이 온통 푸른 강 물결이 몇 갈래로 넘실대며 중첩되는, 그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나는 내 손에 푸른 바구니 보석 꽃들을 감싸 안으며 “어여 가자, 어여 가자” 하며 푸른 흰, 물결을 가슴에 안으며 물결 중앙으로 헤쳐 걸어 들어갔다 며칠 전 한 낮 꿈속에 나타난 장면이다. 누구나 살면서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꿈이 있어 나에게도 이 날의 꿈은 바로 그 몇 가지 선명한 내 마음의 울림을 강하게 울리고 내 몸을 떠나지 않고 가슴에 넘실댄다. 도대체 그 여러 갈래의 흰, 푸른 물결의 장관과 푸른 보석 바구니의 이미지가 어떠한 내 요즈음의 심경을 상징화하는지, 애써 내 몸을 들여다보고 또 보곤 한다.

나는 가끔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한다. ‘경계’를 넘어가면 없는 세계가 있을 것이고 내가 그 없는 세계를 볼 수 있을까하는 물음,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시선에 경도되고 싶은 마음의 파장이지만 고개 들면 나무 가지 저 하늘 엇비슷 뻗은 가지 공간 사이로 흩날리는 흰 천들을 보며 그 흰 천이 만들어내는 바람과 정지의 시간, 그 시간 너머 보이는 공간의 호명 소리, 그 소리를 따라가는 나의 시선은 없는 세계의 텅 빈 공간을 따라가고 있다, 라는 도취와 착각에 빠지고 싶어 하는 날들이 있다. 마치 버려진 산비탈 곳집에 나 홀로 노래하며 도취되어 광목천들 어루만지며 따라가고 싶어 하던 날들 말이다.

1년 전 3월 왕고모님의 임종을 전해 들으며 달려간 곳은 지방 소도시의 허름한 시립 병원 영안실이었다. 일본으로 재가해 떠난 딸을 그리며 평생을 홀로 지내신 키 작은 왕고모님은 그 몇 해 전 교통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박으시고 외롭게 살다가 가셨다. 어린 시절 천수경을 틀어놓고 앞산의 새와 나무들을 어루만지던 왕고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날 우리 형제들은 허둥지둥 고모님의 마지막 길을 따라 화장터로 갔다. 작고 초라한 그러나 마지막 육신이 떠나는 그 자리, 형과 내가 본 고모님의 환영, 아재가 왕고모님을 부르며 그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나오라고 한다. “고모님, 나오세요, 빨리 나오세요” 얼마나 뜨거우실까 심장과 생각이 멎고 무엇이라도 부여잡고 매달리고 싶은 이 순간, 한 끈이라도 잡아 인연의 밧줄 잡고 싶은 심정은 우리가 살아있다 라는 사실조차도 믿기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80여생이 정지된 시간, 그 너머 흰 세상으로 간 것이다. 그 날 흰 천에 쌓인 유해는 고향으로 떠났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도로 곳곳에 서 있는 봄 붉은 꽃나무들마다 왕고모님의 얼굴이 어른거렸고 수많은 흰 천들이 치악산 골짜기 저 쪽으로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한때 강이 보고 싶어 내 몸의 거처를 강 옆 작은 도시에 정하고 일이 끝나면 밤이건 낮이건 그 강을 둘러보는 습관을 가진 적이 있다. 달 밝은 밤이면 하염없이 강 옆 나무 그림자에 비친 이파리들의 운무를 감상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바로 앞 어둠에 빠져 허우적이는 내 영상을 내가 겁을 내며 상류로 상류로 걸어가던 그 강 마을 흔적들의, 밤의 환영들에 취하곤 했다. 가을, 아니 겨울 밤 강가를 걸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 옆 버드나무 혹은 아카시아 나무 마른 가지에 걸린 흰 비닐 천들, 저 머언 상류에서 7, 8월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 붉은 황톳물에 휩쓸려온 그것들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어두운 밤 강 옆 버드나무 가지에 걸린 그 흰 비닐 천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말 건네는 소리에 이끌리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가 알고 지내는 친구가 자기 꿈에 내가 나타나서 검은 빈 봉지를 건네더라는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산비탈 야산 움막을 짓고 하얀 대낮에 잠을 자고 있던 나는 친구의 호명에 일어나 그 움막을 나오며 아무런 말없이 친구에게 묵묵히 검은 빈 비닐 봉지를 건넸다. 친구는 말없이 검은 봉지를 받아들고 나는 다시 산비탈을 걸어 올라가고 친구와 나의 거리는 멀어지고 검은 비닐 봉지를 꼭 껴안은 친구의 모습과 산비탈 움막 속으로 사라지는 나의 모습은 정확히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고 친구는 전했다. 그 날 친구는 그 검은 빈 비닐 봉지의 의미를 물었고 나는 “많은 것을 주고 싶어서 그랬겠지” 라고 대답하고 그 움막과 검은 비닐 봉지를 음미해 보았다.

이제 2월이 지나 봄이 올 것이다. 이 겨울 검은 나무 가지들은 마음껏 메마른 바람과 어두운 그림자의 시절을 누렸다.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개들이 몰려다녔고 바람은 흰 가루를 뿌리며 나무를 흔들었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을 그 무형의 형체들은 검은 눈물과 흰 웃음을 흘기며 나타났다 사라지는가. 언젠가 내 꿈속과 이 곳의 모든 인연들이 도저히 내가 볼 수 없는 저 환영의 세계에 떠돌지라도 저 나무 가지 그림자 흔들리는 경계의 시간과 공간 그걸 응시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는 나무를 어루만져 본다. 저 가지에 흰 천들이 걸려 있다.

* 김태동 시인은 시집 <<청춘>>을 펴냈다.
(2006.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