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밤베르크, 세상의 모든 문화유산 |김연수|

내가 밤베르크로 간다고 말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물론 독일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 잘 됐다”며 나보다 더 좋아했다. 당연히 나는 뭐가 잘 됐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밤베르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들어가는 유명한 관광지이고 알프스 북쪽에서는 유일하게 교황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리틀 베니스’라고 불릴 만큼 운하가 유명하다고. 내가 조금 석연찮은 표정을 짓자, 그들은 하나 더 덧붙였다. 밤베르크에는 ‘라우허 비어’라고 말하는 훈제 맥주가 유명하다고. 그건 마음에 들었다. 오직 맥주 때문에 칭따오와 삿포로와 마닐라를 좋아하는 내게. 하지만…….

내게 세상의 모든 관광지는 휴일의 놀이공원과 같다. 나는 휴일의 놀이공원을 대단히 싫어한다. 거기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무리의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 모두를 거대한 열린 지갑으로 보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지갑을 가진 사람과 거스름돈을 가진 사람. 내가 밤베르크로 간다고 나보다 더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내 시들해졌다. 나는 냉소적인 여행자였다.

내가 “밤베르크란 역시 거대한 에버랜드와 같군요”라고 말하자, 독일에서 10년이 넘도록 머물던 한 유학생은 정말 특이한 생각을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난 곳은 레그니츠 강의 한 가운데 섬처럼 지어놓은 옛날 시청 건물로 가는 다리, 그러니까 낮은 다리(Untere Brücke)였다. 뷔르츠부르크와 퓌센을 잇는 로맨틱 가도에는 바닥에 깔린 중세 시대의 편석만큼이나 많은 동양인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로맨틱 가도에서 비켜 서 있는 밤베르크에는 독일인 관광객들이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낮은 다리에서 보이는 ‘리틀 베니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그를 금방 알아봤다. 지난 5월, 함부르크에서 딱 한 번 봤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그와 함께 세 군데의 식당을 돌았다. 스페인 선술집 메뉴인 ‘타파’(요리 당 가격이 2.8유로에 불과하니 또 그만큼 일본 요리를 떠올리게 만들 만큼 깔끔한 해산물 요리인)를 전문으로 하는 볼레로와 라우허 비어로 유명한 비르츠하우스 줌 쉴렌켈라와 아이리쉬 펍인 멀리간이었다. 론리 플래닛 독일 가이드에 나올 만큼 유명한 두 식당을 돌면서 이미 취한 터라 멀리간에서 기네스를 주문했을 때는 그 맛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그 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약속이 있었지만, 결국 밤베르크를 떠나지 못했다. 벌써 밤베르크에 온 지 3주가 지난 내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소매를 붙들고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밤베르크는 사람들로 넘쳐 났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밤베르크에는 운하와 골목길과 15분마다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와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온 평범한 독일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도 있었다.

밤베르크 시내 주택가에 ‘M스튜디오’라는 작업실을 가진 마이크 로제는 환갑을 훨씬 넘긴 화가다. 그의 작업실에 갔더니 1960년대 슈피겔 표지로 꼴라쥬 작업을 한 작품들이 한 쪽 벽에 일렬로 붙어 있었다. 표지 사진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놓고 말풍선을 달라 뭐라고 코멘트를 해놓았지만,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슈피겔 지 앞에 붙은 그의 얼굴은 젊었다. 밤베르크에 오래 살았으므로 그는 내게 밤베르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본의 교토나, 혹시 알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주와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물론 교토는 알았지만, 경주는 몰랐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가 경주를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밤베르크는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7개의 언덕 위에 만들어진 도시다. 1014년 로마황제에 즉위한 하인리히 2세와 왕비 쿠니군데는 밤베르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이다. 내가 그 독일 유학생을 알아본 장소도 낮은 다리에 있는 쿠니군데의 동상 앞이었다. 1007년 하인리히 2세는 밤베르크를 자기 왕국의 수도로 결정하고 주교의 도시로 만들었다. 언덕 위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진 것은 그때부터다. 밤베르크가 바이에른 주로 편입된 것은 1802년의 일이었으니 그 전까지는 주교가 다스리던 공국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교토나 경주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밤베르크가 오직 고도이기 때문에 교토를 떠올린 것만은 아니었다. 교토의 청수사(淸水寺) 절 아래 식당에서 청주를 마실 때, 내가 본 “바른 길(正路)은 이쪽으로”라는 안내판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언제나 그런 안내판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청수사 아래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안내판의 말을 의심했다. 한 잔 마신 청주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청수사 앞 기념품 상점 거리였다. 내 옆으로는 그 거리 뒤쪽의,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주택가가 있었다.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이 기념품 앞 상점 거리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그 주택가 쪽이라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 쪽으로 내려간 내가 본 것은 수많은 비석이 서 있는 묘지였다. 그 때의 충격은 좀체 잊히지 않는다. 모든 화살표가 왜 기모노를 입은 키티 인형 따위를 파는 기념품 가게 쪽을 향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나 할까.

밤베르크가 거대한 에버랜드와 같다고 한 내 말은, ‘진짜’ 사실이다. 관광객들이 아는 밤베르크는 평일에는 야채시장이 열리는 막스플라츠에서,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뤼너마크트 거리를 지나 높은 다리와 낮은 다리를 건너 밤베르크의 상징물인 네 개의 첨탑을 지닌 돔까지가 전부다.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그 좁은 거리들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걸어갈 수 없을 정도이니 어린이날의 에버랜드보다 더 복잡하다(두 곳을 모 경험했으니 내 말이 맞을 것이다). 가로세로 500미터 정도가 될까 말까한, 그 거리에서 벗어나면 밤베르크는 하염없이 조용하다. 좁은 골목과 운하와 공원이 있을 뿐이다. 바른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는 언제나 그런 곳을 향하지만, 바른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일은 항상 화살표 반대쪽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밤베르크는 여전히 고독한 도시다.

쉬테판은 레게 파마를 한 금발머리를 지닌, 대단히 ‘쉬크’한 독일 조각가다. 그의 애인은 스페인문학을 전공하는 아르헨티나 여인이다. 나는 그녀에게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얘기해줬다. 한국의 반대편이 바로 아르헨티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그녀는 깔깔거리며 잘 웃지만, 쉬테판은 주로 인상을 쓰고 다닌다. 내게 대우 김우중의 안부를 연신 물었던 루마니아 소설가인 세자르가 밤베르크는 박물관 도시일 뿐, 살아 있는 밤 문화가 없다며 불평하자, 쉬테판이 세자르에게 섹스숍이나 라이브쑈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세자르는 자신이 라이브쇼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의 리얼리티를 알고 싶은 마음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쉬테판이 소리 높여 얘기했다. “There is no reality.” 거기에 리얼리티는 없다. 당연하지. 그건 쇼니까. 하지만 그럼 어디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밤베르크에 가면 레그니츠강 사이에 지어진 옛 시청 건물을 볼 수 있다. 그 건물의 한쪽은 앞으로 돌출돼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언덕 위의 성당에 사는 주교가 아랫동네 부르주아들이 시청 건물을 확장하려고 하는데, 허가를 내주지 않아 강 위로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밤베르크에 오면 밤 12시까지 조명을 비추는 첨탑 네 개짜리 돔과 17세기에 지어진 운하 위의 성 빌라 콘코르디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밤베르크에 오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과식해서 포만감에 젖어 있거나 오랫동안 걸어 다녀 지쳐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그건 다 쇼일 뿐이다. 거기에 리얼리티는 없다.

내가 권하는 밤베르크의 명소는 운하로, 공원으로, 언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들이다. 때로 그런 모퉁이에서 길을 잃은 관광객이 내게 묻는다. ‘물 위의 성’이 어디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나는 모른다, 나도 이방인이다. 그 ‘물 위의 성’이라는 곳이 바로 내가 사는 빌라 콘코르디아를 뜻한다는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그게 바로 낯선 도시의 좁은 골목길에서 우리가 하는 짓들이다.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화살표가 있으면 우리는 안심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 그건 쇼니까. 그렇다면 어디에 리얼리티가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이방인에게 길을 묻는 게 아니겠는가. 세상의 모든 유네스코 지정 세계의 문화유산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좁은 골목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이고 외롭기만 하다. 그러니 5월 5일 에버랜드에서도 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정도는 이해해줘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관광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며, 우리가 쓸 수 있는 여행기의 전부다.
(2006.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