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내가 배운 두 단어 |이영주|

1. 혜성

나는 지금 고독한 지구, 를 보고 있다.
은하는 가스와 먼지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몇 십 억, 몇 천 억 개나 되는 별이 있다. 그 별 하나하나가 어느 우주인에겐가는 태양일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태양은 단 하나의 우주인에게만 허용된다. 그렇다면 단 하나의 태양과 우주인은 얼마나 많은 것일까?

구름처럼 부식된 철골로 떠 있는 그녀의 옥탑방에는 오랫동안 걷지 않은 빨래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꼭대기에서 내려온 그녀는 언제 다시 올라갈 지 아무도 모른다. 태양에 접근하면 태양 복사열에 녹아서 혜성의 꼬리가 생기고…… 그러나 꼬리는 그림자 때문에 아름답다. 전란 역병 천재지변 등의 흉조를 예고했던 살별. 그녀는 오랫동안 방 안에서 늙었다. 백발의 머리칼들이 산동네의 골목길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고, 축축한 꿈자리에선 매일매일 무기들이 쌓여갔다. 이번 생의 전쟁은 꿈속과 같아. 명왕성 바깥에 있다고 알려진 오르트 구름으로부터 혜성은 태어났다. 그녀는 소녀에서 노파로, 늙은 라푼젤로, 신당동 산 17번지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살았다. 얼음덩어리와 먼지로 이루어진 지저분한 혜성은 구름의 본질일까.
그녀와 나는 몇 억 년의 거리만큼 멀었다. 나는 쭈쭈바를 물고 땀을 흘렸고 그녀는 살별처럼 무서운 눈빛이었다. 늘 혼자서 꼭대기를 왔다 갔다 하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온갖 소문을 주고받았다. 나는 밤마다 쪽창으로 비쳐드는 꼭대기의 가등 빛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나는 혜성의 꼬리를 보았다. 우리 집 마당에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빛무리를 보고 나는 그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그때 <<데미안>>을 읽고 ‘고독’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녀가 언제 방에서 내려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녀이며 노파가 되어가는 요즘의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우주에 대한 것은 서서히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

늙은 라푼젤이라는 우주인의 태양은 다른 별을 비추러 갔을까? 어쨌든 이제 나는 새로운 태양의 흑점을 바라보면 된다.

2. 섬

책상 위에 먼지가 쌓인다. 손바닥으로 조금씩 쓸어보니 모래가 가득하다. 황사가 오고 있는 걸까. 물기를 잔뜩 품은 바람이 한낮을 통과할 때 고여 있는 물처럼 쓸쓸하게 앉아 있던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다. 백령도에 간 너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바람 때문에 발이 묶인 게지. 너의 어머니가 언제 돌아올지 너는 아니? 소식 좀 전해다오. 언제쯤 배가 뜨는지, 언제쯤 바람이 멈출지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올 수 없는 섬에 갇혀도 우리 딸은 도시에서 정신없이 헤매는구나.
모래 바람이 불고 우리 모두는 섬처럼 떨어져 앉아 서로를 안지 못한다. 잠깐의 여행이 우리를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
어머니라는 우주인의 태양은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 이번 생의 고통은 못 잊겠어. 그것이 때때로 내가 훔쳐본 어머니의 표정. 그러나 어머니라는 우주의 표정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고독한 지구를 보는 일도 잠시 멈추어야겠다. 도시에서 헤매는 자에게도 태양은 있을까? 혜성은 다른 천문학적 시간 척도에 비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에 소멸되므로, 현재와 같은 빈도로 관측이 되기 위해서는 혜성이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배운다.

* 이영주 시인은 시집 <<108번째 사내>>를 펴냈다.
(2006.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