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자해공갈과 장난기 |서준환|

- 아방가르드에 대한 한 토막의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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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다. 세계 도처에서 이를 기념하는 관련 행사와 음악회가 자주 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레퍼토리를 녹음한 유명 연주자들의 음반 발표도 활발하다. 그런 까닭에 여느 때보다 여기저기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주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큼 모차르트가 대중적으로 친숙해졌다는 생각까지 들진 않는다. 사실 대중적으로 친숙해지기에 모차르트는 어쩌면 너무 이상하고 복잡한 음악가일지도 모른다. 연주회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자주 상연되는 오페라 <돈 조반니>나 <마술피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오페라의 근저에 깔린 극중 인물들의 분열상과 수수께끼 같은 세계관에 관심이 없고, 왜 모차르트가 하필 당대의 판금 작가요 정치적 망명객인 기욤 드 보마르셰의 희곡을 오페라의 대본으로 골라 들었는지 구태여 알려 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명랑하고 활기 찬 고전 양식의 곡조”만을 부분적으로 소비하고 싶어 할 뿐이다. 어떠한 문화도 자본화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사회에서라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예술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텍스트 안팎에서 자기를 좀 더 섬세하게 이해해달라고 부르짖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대중사회는 그들을 자본화의 방향에 부합하도록 소비하기 좋은 겉모습(相)으로 순치시켜놓고 낄낄거릴 뿐이다. 가령 ‘모차르트 이펙트’는 그렇게 순치된 모차르트의 겉모습을 태교에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 기능적 단순화의 범례일 것이다(유감스럽게도 모차르트를 좀 아는 사람들은, 설령 백 번 양보해서 그 이펙트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그런 태교가 공연히 조울증 환자들만 잔뜩 양산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 모차르트의 음악은 조울증 환자의 습한 너털웃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모차르트는 몰이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비운의 천재였다. 그리고 신문의 사회면에서 목도되듯 몰이해는 종종 자해공갈을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일찍이 자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귀도 베고 자신의 음악 자체도 엉터리로 뭉개버리는 자해공갈을 감행했다. 내 생각에 그 자해공갈의 증거가 바로 <음악적 농담 Ein Musikalische Spass>이라는 생애 만년의 디베르티멘토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쓴 전기상의 시점은 가히 최악의 정황이었다. 평생토록 자신이 정신적 지주로 의지해온 아버지 레오폴드가 사망했고 한 겨울에 땔감이 없을 정도로 궁핍했으며 아내 콘스탄체와의 누적된 불화도 심각했다.
<음악적 농담>은 아버지의 부음을 접한 후 모차르트가 가장 먼저 탈고했다는 곡이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이 곡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음악적 농담>이 제목과는 달리 꽤 비장하고 어두운 악상에 짓눌려 있을 거라고 예단하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곡은 제목대로 엉뚱하고 해괴한 ‘하이 코미디’에 가깝다. 그냥 귀로만 들어도 괴이하다 싶을 만큼 기본 패턴도 지키지 않는 곡의 화성 진행과 악상 전개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모차르트의 다른 음악들은 알지만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한 동안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모차르트 같은 대천재가 썼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졸작이 바로 이 <음악적 농담>이다. 그런데 이 곡이 졸작이라기보다는 작곡자 자신의 고의적인 망가짐 즉 자해공갈로 여겨지는 까닭은, 엉성한 악기 편성을 채택한다든가 말도 안 되는 불협화음을 쓴다든가 당시로선 황당하게도 한 소절 안에 두 가지의 복수 조성을 겹쳐놓는다든가 하는 실수 등이 모두 일부러 저질러진 장난질의 땟국이기 때문이다.
만화가이자 음악칼럼니스트인 신동헌 선생은 이 곡이 하찮은 재능에 비하면 높이 평가 받는 동시대의 동료 음악가들에게 모차르트가 자기도 ‘그런 수준의 음악’ 쯤은 얼마든지 쓸 줄 안다는 것을 짓궂게 ‘과시’하면서 동시에 ‘그런 수준의 음악’을 패러디하려는 요량에 따라 작곡된 풍자 음악일 것이라고 유추했다. 이것은 결국 자해공갈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자해공갈처럼 비장해 보이는 자기학대의 폭거가 예술 안으로 들어오면 엉뚱한 장난기와 결합해서 새로운 표현양식과 예술적 인식의 지평을 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음악적 농담>에 나타난 자해공갈로서의 장난기 역시 모차르트 시대에는 황당한 고의적 망가짐에 불과했지만 그 곡에 쓰인 비대칭적 구절법이라든가 온음음계, 복수조성의 사용 등은 먼 훗날의 드뷔시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음악의 작곡기법을 선취해서 보여준 것일 수 있다는 비평적 견해가 있을 정도이다. 그럼 혹시 아방가르드란 게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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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고등 사기”라고 선언하고는 어느 미합중국 대통령 앞에서 바지 벗기(하지만 이게 과연 풍자적 퍼포먼스였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를 시연해 보이며 칠십 노구에 노 팬츠 차림으로 망가지기를 마다하지 않은 백남준의 마지막 공개 작업은 피아노가 뒤로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키고 그의 일본인 장조카가 악보를 씹어 삼켜야 하는 가학적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백남준이 애틋한 표정으로 오랜만에 진지하게 아리랑의 한 소절을 피아노로 연주했다든가 그 일본인 장조카가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보조해온 피붙이였다는 점 등에서 그 가학은 자해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백남준은 유장하게 아리랑 가락을 연주하다말고 도대체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는 듯 독수리 타법으로 아무 건반이나 찍어 누르더니 급기야는 보면대 위에 놓인 아리랑의 악보를 갈가리 찢어발겨서 장조카의 입 속에 쑤셔 넣고는 얼른 씹어 삼키라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재촉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피아노는 ‘콰당’하고 뇌진탕을 일으켰다.
백남준 앞에서 그 피아노는 예술과 함께 빈사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예술을 해치자면 피아노의 뇌진탕쯤은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자해의 절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이 행위예술은 그저 실없는 농담처럼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백남준도 그냥 할 일이 없어서 피아노를 넘어뜨렸노라고 자인했다.
이 장난스런 자해소동은 존 케이지에게 헌정되었다. 존 케이지가 누구냐는 방송 기자의 물음에 백남준은 걸걸한 목소리로 존 케이지는 자기의 아버지라고 단언했다.
백남준의 아버지인 존 케이지도 장난꾸러기이기로는 그 자식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네 살배기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토이피아노를 위해 열심히 작곡하는가 하면 피아노를 망가뜨릴 심산으로 해머 줄에 빨래집게와 볼트, 너트 같은 이물질들을 끼워 넣고 연주했다. 그렇게 망가진 피아노가 맑고 고운 울림대신 타악기 같은 탁음(濁音)밖에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왜 멀쩡한 피아노를 망가뜨리고 그래? 자기의 표현 도구에 그 식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은 몸에 상처를 내고 경기에 출전하려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가믈란이나 발리 음악을 연상시키면서 피아노 고유의 음색과 본연의 음악적 틀거지를 전면적으로 뒤집어엎은(서양 음악에서 멜로디와 화성의 로고스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피아노의 이지적 상징성은 상당하다)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의 탄생 또한 그러한 자해 충동과 코믹한 장난기의 접합에서 출발했다. 동양의 전통 타악기처럼 뒤집힌 피아노를 보면서 누군들 난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존 케이지가 정신적 스승으로 사숙한 에릭 사티(1866-1925)는 현대 예술이 어릿광대들의 자해와 장난질일 것임을 예언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 음악을 좀 더 해괴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장난을 쳐볼 목적으로 관현악의 곁다리에 타이프라이터나 비행기의 소음 따위를 삽입했을 뿐 아니라 (이 엉뚱한 장난질을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샤페르와 존 케이지는 뮈지크 콩크레트 musique concrète 즉 ‘구체음악’이라는 장르명으로 계승해서 발전시켰다), 상징주의 문학의 악영향으로 고상하게 멋 부린 제목들이 판치는 주류 음악계의 풍조에 맞서 자기 음악에는 <역겨운 멋쟁이를 위한 세 개의 점잖은 왈츠>나 <친구한테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무좀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함> 같은 농담조의 표제 또는 악상 표현만 골라 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아방가르드의 다섯 노총각들>>을 쓴 칼빈 톰킨스에 따르면 존 케이지가 맨 처음 사티를 주목한 것도 저런 농담들에서 어릿광대짓 이상의 예지적이고 독창적인 풍모를 엿보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같은 책에서 칼빈 톰킨스가 위대한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공통분모로 지목한 것은 바로 그러한 하이 코미디의 성향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 하이 코미디를 불러온 것은 모차르트가 <음악적 농담>에서 내보인 것과 맥락이 다르지 않은 자해공갈의 충동이다.
모차르트와 아방가르드의 관련성을 따져보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자해 충동은 어둡고, 장난기의 익살은 밝은 거라는 대립의 통념이, 적어도 예술가의 영혼 안에서만큼은, 유효하지 않으려니와 둘이 음양(陰陽)처럼 단단히 엇물려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 내겐 더 흥미롭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순화된 존재 이해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모차르트처럼 불가해한 수수께끼를 도매금으로 임산부들의 태교에 팔아먹는 데 익숙한 동시대의 집단적 사고에서 개개인이 자유롭기는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밝지만 어둡고, 그늘졌지만 그늘이 없다는 언어 장난 또는 장난 언어의 담금질은 여전히 긴요할 수밖에 없다. 말의 자해 충동에서 생겨난 장난기와 농담의 활력에도 이상과 같은 예언자적 성취의 몫이 주어져 있을 거라는 믿음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소설가]
(2006.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