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어줍고도 어쭙잖은 생각들 |은희경|

오래 전 리라이터(rewriter)란 직함으로 여성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장은 <뉴욕 타임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도라고 강조했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보낸 러프 스케치에다 관점과 기승전결을 갖추어서 완전한 기사로 빚어내는 역할이 바로 리라이터의 몫이라는 거였다. 물론 나에게 <뉴욕 타임스>의 리라이터와 같은 업무는 맡겨지지 않았다. ‘기역니은’조차 되지 않는 외부 필자의 원고를 고치거나 수습기자들의 글 솜씨에 대해 사장에게 고자질을 하는 정도의 일이 주어졌을 뿐이다. 나중에는 고백수기도 썼고 <밤의 메모>와 <가계부> 같은 부록도 만들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는 한때 재색겸비를 ‘사칭’하며 문학토론을 생업으로 삼던 기고만장한 대학원생의 기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교의 강사 자리를 잃은 뒤 호구지책으로 몸담고 있을 뿐 나의 정체성이 여성지에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계약직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것도, 그리고 대중 잡지에서 요구하는 이상으로 단어와 문장에 엄격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한글 전용론자에 가까웠다. ‘유입되었다’를 ‘흘러들어왔다’라고 일일이 고칠 만큼 한자를 기피했다. “중요한 원고 아니니까 대충만 손보라”는 부장의 지시에도 아랑곳없이 외부 필자의 원고는 완전히 뜯어고친 뒤 전체를 원고지에 새로 썼다. 또한 동료들이 교정을 부탁해오는 데에 신이 난 나머지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야근을 하곤 했다. 회사에 진정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몇 년 뒤에 그 회사에서 쫓겨났다.
본격적인 교정 아르바이트 시절이 시작되었다.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은 다음날 산부인과 병실에서 원고에 코를 박고 교정을 보다가 담당의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은 일까지 있었다. 그때에도 역시 모국어에 대한 불타는 사명감과 고지식함이 문제가 되었다. 한 출판사에서 신문에 낸 교정 아르바이트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하여 합격한 이후 ‘공채’라는 자부심까지 더해졌다.
나는 단순 오자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교정자의 자존심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새워 문법에 맞도록 어순을 바꾸고 문장을 뜯어고치곤 했다. 공부하는 교정자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바뀐 맞춤법 또한 열심히 익혔는데, 왜 ‘쌍동이’는 ‘쌍둥이’로 바꾸면서 ‘쌍동밤’은 그대로인지 따위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내가 교정을 보면 중국집에서는 ‘추리닝’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자장면 배달을 해야 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 같은 이국적 표현을 서툴다고 경멸했으며 번역투 문장은 가차 없이 편안한 한글로 바꾸어놓았다. 이 역시 회사에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의심이 가는 대목이지만.
어찌어찌하여 출판사에 다니게 된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지식하게 문법만을 주장하다가 필자와 부딪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럴듯한 전문용어까지 동원해가면서 편집자로서의 권위를 철통같이 지켰다.
독자로서의 나는 어땠는가? 오자가 있으면 당연히 그 다음부터는 책의 내용에 신뢰가 가지 않았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스트로’를 ‘스트롱’으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작가와 출판사를 한꺼번에 깔보기 예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제발 제대로 된 편집자가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 나의 신뢰를 잃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날 소설가가 되었다. 첫 책의 원고를 넘긴 뒤 나는 내용이야 뭐라 하든 맞춤법에만은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몇 가지 지적을 했다. ‘일요일은 빨래가 많다’가 아니라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가 맞다, ‘끝간 데’는 ‘끝 간 데’로 띄어 써야 한다 등등. 놀랍게도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
“고지식하게 문법에만 따르는 건 반대예요.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소설가로서의 나는 확실히 한국어를 대하는 방식이 교정자였을 때와는 달랐다. 표현의 폭을 넓히고 뜻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한자어든 외래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통적인 문장에서 촌스러운 느낌을 받는 경우조차 있다. 예전에는 ‘많이’와 ‘매우’의 사용을 엄격히 구분했다. ‘많이 보고 싶다’ ‘많이 아프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눈이 매우 내렸다’만큼이나 어색했다. 그러나 이제는 문법적으로 맞는 ‘매우 보고 싶다’가 더욱 어색하게 들린다.
또한 나는 소설가가 독자를 자신이 만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 대한 실감과 단절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낯선 어투와 틀린 문법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리듬을 맞추기 위해 한국어에서는 불필요한 ‘나는’을 반복하는가 하면, 톤을 낮추려는 의도로 ‘아내는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라고 쓰는 대신 ‘아내는 또 다른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식의 번역투를 사용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편집자로부터 지적이 없을 리 없다. 그러다보니 내가 보내는 교정지에는 상당히 잔소리가 많다. 편집자가 고친 부분에 대해서 “문법상 틀린 줄 알지만 난 그냥 이렇게 쓰고 싶다”라든가 “이렇게 표기하면 프랑스 요리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쇠죽 같은 어감이 된다”라고 빈 칸에 빼곡이 써넣는다. 심지어 “이 어법은 ‘고독은 오랜 친근이다’라는 김수영 식의 내가 좋아하는 어법이니 문법에 안 맞아도 놔둬주세요”라며 남의 권위를 빌리기도 한다.
“그녀는 아침마다 서쪽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에 눈을 떴다”는 문장을 두고 편집자와 나 사이에 이런 글이 오간 적도 있다.
– 편집자 : “아침에는 서쪽 창으로 햇빛이 안 들어옵니다. 동쪽 창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 나 : “주인공의 우울한 성격상 동쪽 창은 분위기가 안 나니 과학적으로 틀리더라도 서쪽 창을 쓰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문법과 사실성을 떠나 내 느낌대로 쓰겠다는 것, 그것은 단지 언어에 대한 나의 태도가 유연하고 활달해졌기 때문일까. 혹시 자기가 아는 언어로만 말하려는 편협한 자의식에 도취된 건 아닐까.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단어를 발견하거나 혹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문법을 알게 되었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언어의 세계는 편집자의 규율과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그 어떤 미지이면서 무한한 유희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어릴 때 나는 음악의 세계가 곧 끝날 거라는 예언을 했다. 음표의 조합이 다 떨어지면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여서 언젠가는 모든 문장을 다 사용하고 조합해서 써먹은 뒤에는 새로운 문장이 나올 수 없어 글도 끝나버릴 거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만은 분명해지는데 나는 이제 어린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게 어느 날 밤 최일남 선생의 산문을 읽다가 생각난 내용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로 이 칼럼을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젊은 세대의 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수한 만연체 입담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데 한 군데에서 눈길이 멈춘 채 나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어줍은 짓을 하느라고–”.
‘어줍은 짓’이라고? 틀림없이 ‘어줍잖은 짓’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선생이 옳았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바로 전날 여행지에서 들었던 샹송이 아닌가. 순간 머쓱해졌다. 그 참, 무슨 샹송이람! 어줍게도!! 아니, 어쭙잖게도!!
어줍다 : 1) 언어, 동작이 부자연하고 시원스럽지 않다. 2) 손에 안 익어 서투르다. 3) 손 발 허리 등이 저려 부자연스럽다.
어줍잖다 : ‘어쭙잖다’의 잘못.
어쭙잖다 : 언행이 비웃음을 살 만큼 분수에 넘치는 것 같다.
– <<엣센스 국어사전>> 제5판
[소설가]
(200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