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따뜻한 국 |최정례|

미미 칼바티(Mimi Khalvati)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라났으며 영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나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미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면서 두 나라의 말과 문화적 차이와 두 세기에 걸친 역사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녀는 영국에 살면서 영어로 시를 쓰지만 영국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란 말인 페르시아 말도, 이란 식의 생활 방식도 모르니 이란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긴장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혹시 잘못 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전전긍긍해야 하는 나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언어인 영어로 복잡한 문제를 섬세하게 말할 수 있으며 더구나 그 언어로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으니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미미의 처지를 들으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호텔에 딸린 작은 ‘breakfast room’에서 매일 똑 같은 아침 식사를 했다. 커피와 우유, 식빵, 인스턴트 오트밀을 내내 먹고 있다가 내가 조금 질렸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매일 아침 뜨거운 국을 먹는다고 무심결에 이야기했더니, 미미가 건강에 좋기 때문이냐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우리의 습관이라고 했더니, 그녀에게는 그 말이 이상하고 신기하게 들렸나 보다. 미미가 중얼거렸다, 따뜻한 국, 습관, 따뜻한 국의 습관…..
미미는 이란의 몸과 피부를 가졌지만 이란의 관습도 모르고 영어를 쓰지만 그렇다고 그를 영국인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미미는 자기 나라만의 습관 같은 게 뭔지 모르겠다며 슬픈 기색을 보였다. 이런 경우에도 위로해 줄 말이 있을까. 너는 영어로 이란의 기쁨과 슬픔을 더듬어 쓸 수 있으니 시가 너의 나라가 아니냐, 내가 말했다. 그렇다, 나는 시 속에서 내 나라를 찾을 수밖에 없다, 미미가 대답했다.

아이오와에서의 토요일. 오랜만에 아무 행사가 없는 날이었다. 오전에 커피집 자바 하우스에서 번역 워크숍에서 사귄 친구 멜리사와 함께 내 시 번역을 했고, 오후에는 작가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심심했다. 심심하다 못해 외롭기까지 했다. 내 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 깔리고 그 햇빛에 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운 걸 보자 갑자기 대책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젊은 애들은 잔디에 누워 사랑을 나누고…… 왜 이곳의 햇빛은 이렇게 밝고 화려한가. 알 수가 없다, 똑같은 태양에서 뿜는 햇빛인데…… 햇빛을 피해 방안에 있다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한국식품가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상하다. 감정도 음식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할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감정이 솟을 때 한국 음식을 찾게 된다. 한국 음식은 물기가 많고 끈끈하다. 그것이 몸 안에 들어가 무슨 작용을 하는 것인지 그것을 먹는 동안은 어딘가로 한바탕 흘러가는 것 같다. 드넓은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는 땀을 흘리며 뜨거운 미역국에 깎두기를 먹었다. 확실히 따뜻한 국이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국 없이 시 쓰기와 국 속에서 시 쓰기는 뭐가 다를까?
[시인]
(200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