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내가 브라질에서 돌아왔을 때 |한유주|

□ 모르겠어요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당신의 시간이 나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이 당신의 시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늘 서투르게 서두르며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 육식동물

가장 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나는 손에 쥐어진 지폐 몇 장을 새 구두와 교환했다. 남은 돈으로는 먹을 것, 밝힐 것, 읽을 것, 들을 것, 숨 쉴 것들을 샀던 것 같다. 그 품목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새 신을 처음 신었을 때 발끝에 전해지던 느낌은 남아 있다. 발등을 감싸는 가죽의 감촉은 아리고도 부드러웠다. 말갛게 윤이 나는 신발의 표면을 쓰다듬어보면서, 나는 잠시 잔인한 기쁨의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그 구두가 무슨 색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검정색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구두는 쉬이 닳았고, 색이 바랬고, 가죽은 너덜너덜해졌고, 나는 추억을 가장한 못된 기억이 하나 더 늘어날까 두려워 그 구두를 다른 일상의 물건들과 함께 10리터들이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 밖에 버렸다. 그리고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 브라질

존 업다이크의 <브라질>을 읽은 것은 그 때쯤이었다. 내게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다음에는 <달려라 토끼>를 읽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달려라 토끼>는 오랫동안 절판된 상태였다. <브라질>은 대체물이었다. 인생에 쫓기는 두 주인공들이 몸을 숨기는 브라질의 어느 지점에 대해 “영원한 저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서술한 대목에서 문득 독서가 멈추었다. 나는 “저개발”이라는 단어를,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브라질에 가 본 적이 없다.

□ 캄보디아

지난 해 여름, 나는 캄보디아에 있었다. 떨어져 살고 있는 동생과 함께였다. 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그러한 “고통”은 고통의 범주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효과적인 사례였다. 그들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감정에는 상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므로 다소 불친절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나는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지 않고도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혹은 이야기 해”버리는” 버릇을 들였다. 꽤 쓸 만한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앙코르와트를 에두른 해자를 벗어나면서 소낙비 세례를 받았다. 멀리서 코끼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갑작스레 몇 마디 대화가 빠르게 오고갔고 그 때, 내 안에서, 그리고 동생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예고된 미래였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며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고통. 영원한 감정의 저개발 상태.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리프 시가지에는 신호등이 세 개뿐이었다. 그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광막하게 펼쳐진 붉디붉은 땅을 실컷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능하다면 이 이야기를 허구로 만들고 싶었다. 한데 지금은 묘한 죄책감을 느낀다. 한낮에도 당신이 읽지 못하고 지나친 글자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 농담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당신의 누이, 당신의 이복형이거나 동생이거나, 당신의 어머니거나 숨겨진 아버지거나, 혹은 당신의 아이, 당신의 연인, 당신의 친구들을 이해하고 싶다. 그렇게 당신의 유사가족이 되어 나의 유사감정들을 조용히 고백하고 싶다. 고백이 나의 몫이 아니라면 당신의 고백을 들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동생은 온갖 여행의 품목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헤어드라이어, 비누, 안내책자, 수건, 샴푸병, 물통, 카메라, 지갑과 같은 물건들이 날아다녔다. 말의 파편들이었다.
우리가 서로 끌어안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내 나이만큼의 시간이. 사건을 설명하지는 않겠다.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노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동생이 가능한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지만, 과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먼저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일상

주중의 나는 대개 비슷비슷한 검은 색의 옷을 입고, 음악을 듣고, 일상을 처리하고, 주말 저녁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새벽에는 축구 중계를 본다. 낮에는 깨어있고, 밤에는 잠을 잔다. 돈이 생기면 새 구두를 산다. 출처가 분명치 않은 어떤 말처럼, 좋은 신발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탐색 중이다.

[소설가 / 작품집 <<달로>> 간행]
(2007.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