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여행 이야기 – 긴 수염 사슴코끼리 |이철성|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는 항상 설레임이 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새벽을 걷는 자의 침묵. 그러나 마음은 새로운 속삭임들로 가득하다. 안개가 걷히는 거리. 풍경들은 말을 걸 듯 정겹게 다가온다. 마치 여행자의 출항을 환영하기 위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은 깊이 들이마신 숨처럼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마음에 새긴다. 비로소 집을 나온 여행자! 몸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를 향해 이동할 뿐이지만, 마음은 거대한 한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낀다. 모든 질서가 무질서가 되는 세계. 희망과 절망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미래를 꿈꾸는 세계. 어른은 아이가 되어 길가의 돌멩이들을 툭툭 차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집 없는 거지들은 다가와 친구가 되는 세계. 혼란 속에 숨겨진 비밀들, 그 숨겨진 보석들이 여기 저기서 신비한 빛을 발하는 그러한 이상한 세계.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는 어떠한 고통이 있다. 창문이 없는 자의 슬픔. 어느 비오는 날 창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내는 문을 부숴버릴 듯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었다. 오랫만에 맛보는 비릿한 비의 맛. 그는 밤새도록 걸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삶이 그 모양새를 잃고 사라지려 할 때, 그 뒷덜미를 잡는 심정으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이른 새벽, 피곤한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는 그들은 삶이 사라지려는 곳을 향해 쓸쓸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삶은 안개 속에 삐져나온 나무의 한 가지처럼 쓸쓸할 때도 있다. 떠나가는 연인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자의 애절함. 나의 여행 또한 그렇게 시작되었다.

□ 서해 –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사자떼를 만나다
인천항을 떠나 텐진으로 가는 배는 여름철인지라 보따리 장사들과 배낭족들로 뒤엉켜 있다. 28시간의 배 여행. 모포만이 죽 깔려 있는 객실은 보따리 장사들과 배낭족들이 이뤄내는 오묘한 조화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생들로 보이는 배낭족들은 여기 저기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새로운 신종 게임들에 열을 올리며 크게 떠들어 대고, 한 쪽에선 일부 학생들이 중국어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면 이러한 여행에 익숙한 듯 한쪽에선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저씨들이 TV를 보거나, 고스톱을 치거나, 또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소란스런 객실을 떠나 갑판 위로 오른다. 여름인데도 추운 바닷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뿌연 하늘과 그리 아름다울 것도 없는 서해 바다. 해는 맞은 편 바다 위에 낮게 떠서 일몰을 준비하고 있다. 갑판을 더 내려가 배의 맨 앞 쪽으로 향한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옷은 빵빵하게 불어올라 호들갑스런 소리를 내며 떤다. 바람은 내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저 망망한 바다 위로 휙 던져버릴 기세다. 거대한 바람을 온 몸으로 저항하는 순간. 자꾸 뒷걸음질치려는 몸을 버팅기며 비로소 전망이 탁 트인 배의 맨 앞머리에 섰을 때, 무서움과 함께 어떤 혼란이 찾아 왔다. 미처 예기치 못했던 그 순간, 거대한 바다와 하늘은 거세게 요동치는 대기 속에서 성스런 교접을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 위로 불길들이 솟았다.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바다에 닿기도 전에 바다는 기름 위로 번지는 불처럼 이글거렸다. 나는 거대한 흥분 속에 있었다. 눈이 부셔 가늘게 뜨고 쳐다봐야만 했다. 불들은 마치 태양이 바다를, 바다가 태양을 서로 유혹하려는 뜨거운 몸짓처럼 현란하게 꿈틀거렸다. 그러한 불의 움직임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끼던 나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뿌리를 찾고 싶은 욕심에 부신 눈을 크게 뜨고는 한 곳만을 지속적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잠잠해지는 것이 아닌가. 작고 아름다운 촛불들이 고요한 바다 위를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나운 폭풍 속에 감춰진 눈, 그 평화로운 눈빛 같았다. 조용히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발이 작은 아가씨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시야는 중심을 잃고 다시 촛점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성난 바다가 눈 앞에 다가왔다. 아니, 그것은 정확히 바다가 아니라, 바다 속에 잠겨 울퉁불퉁한 등만을 드러낸 거대한 짐승. 그 짐승이 등에 미친 듯이 꿈틀대는 불꽃 털들을 이고는 태양을 향해 으르렁대며 헤엄쳐 가고 있는 것이었다. 혼란 속에 공포와 신비가 숨어 있다…
객실은 늦게까지 소란스러웠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지루한 배 여행에서 유일한 시간 때우기는 뭐니뭐니 해도 잠.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오후가 되면 배는 텐진의 탕구항에 도착할 것이다. 밤 12시가 다 되가는 시각. 베이징에 대한 안내 책자들을 읽느나 분주했던 나는 대충 짐을 정리하고는 다시 갑판 위로 오른다. 설레이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하다. 답답한 마음으로 도망치듯 떠난 서울. 이제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면서 배 위에서 여행의 첫번째 날을 맞이한다.
배 위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그 위에 서 있는 작은 한 사람. 저 높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 나는 그렇게 나의 작음을 만끽하고 싶다.
어느새 달이 휘엉청 밤바다를 비추고 있다. 반대편 하늘에는 밤별들도 떠 있다. 달이 비치지 않는 바다는 어둠 속에 있다. 그 컴컴한 어둠이 빨려들어갈 듯 어지럽다. 저 깊이를 모르는 어둠. 그러나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다. 옷깃을 여미고, 팔로 몸을 감싼다. 밤이 되니 바닷바람이 겨울바람처럼 차다. 흰 달빛이 바다위에서 더욱 차게 느껴진다. 잠시 저물녘에 보았던 바다를 떠올린다. 무언가 비밀스런 순간을 엿보았을 때처럼 아직도 혼란스럽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때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았을까? 그것에 대해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조차 말을 않는 것을 보니, 그들은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것을 보고도 무슨 중대한 비밀인양 숨기고 있나 보다.
지금은 늦은 밤. 갑판 위에는 아무도 없다. 한 순간 강한 바람이 몸을 뒤흔든다. 추위에 얼굴을 숙이며 난간을 꼭 붙들고 있던 나는, 객실로 내려가려다 다시 한번 밤바다를 쳐다본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바다 위로 예기치 않았던 광경이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기만 하던 달빛 아래로 수많은 바다짐승들이 튀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잠시의 틈을 두고 다시 바다를 보았으나 고요한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객실로 내려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사냥군처럼 먹이를 찾듯이 바다 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이상한 짐승들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바다 위 한 곳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수백 마리의 바다짐승들이 달빛을 받으며 일제히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짐승들은 언젠가 TV에서 본 ‘바다사자’가 분명했다. 목 주위가 검은 털갈기로 뒤덮힌 바다사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피곤해진 눈은 다시 촛점을 잃고 말았다. 그러자 그 많던 바다사자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저물녁에 보았던 등껍질이 검고 울퉁불퉁한 거대한 동물의 등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넓은 바다 위로 자신의 끈적한 등짝을 출렁이며 어디론가 유유히 가고 있는 짐승의 모습. 그리고 순간 어지러운 눈을 감았다 뜨자 그 짐승마저도 사라지고,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차가운 달빛 아래 고요히 출렁이고 있었다.

□ 베이징 – 거대한 소란
뜨거운 태양, 먼지 이는 거리, 정돈되지 않은 교통, 뒤엉켜 몰려가는 수많은 자전거 군단, 여기 저기서 가격을 불러대는 노점상들의 떠들석한 목소리, 자주 가래침을 뱉는 소리들, 아무데나 버리는 휴지들, 거리의 이발사들, 거리의 자전거 수리공들, 거대한 건물들, 너무나 넓고도 훌륭한 도시 속의 공원들, 바가지 씌우는 상인들, 여기 저기서 언성을 높여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호객하느라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미니버스차장들, 공중 화장실 앞에 책상을 펴고 앉아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 더러운 화장실들, 팬티가 보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짧은 치마로 자전거를 타는 아가씨들, TV 앞에 앉아 저녁마다 방송되는 축구경기를 놓치지 않고 보는 축구광들, 여기 저기서 술과 담배를 권하며 우정을 다지는 모습들… 이 모두는 중국에 처음 와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베이징에 도착한 첫날 저녁, 숙소인 경화반점으로 돌아가다가 어두운 밤거리에서 한 거지를 보았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를 느껴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어두운 거리 한켠 버려진 화단 위에 등을 기대고는, 선 채로 잠에 빠진 한 사내. 선 채로 잠을 자다니!… 미친 듯이 산발한 머리와 깡마른 얼굴. 사내는 왼손, 오른손에 각각 네 개씩의 더러운 자루들을 손에 쥐고는 입을 한껏 벌린 채 잠에 빠져 있었다. 단말마의 고통스런 순간에 멈춰버린 얼굴. 어디선가 들은 얘긴데, 거지들은 이것저것 잔뜩 싸 짊어지고 다닌다고 한다. 물론 몸 자체가 집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이유가, 못 가진 자의 강박적인 두려움 때문이라나. 한껏 입을 벌린 채 고통스런 얼굴로 자고 있는 그 거지는, 자면서도 자루들을 쥔 두 손에 꼭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그 사내를 지켜보면서, 삶의 질기고도 무서운 모습과 함께 어떤 낯선 불쾌감을 느꼈다. 자면서도 움켜쥔 저 손아귀의 힘.
다음날 아침, 붐비는 큰 거리 한 켠에서 그 거지를 또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자루 수가 줄어 있었다. 두껍고 더러운 웃옷은 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열려 있었고, 바지 자크가 벌어져 검은 털들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거대한 소란 속에서도 아무 일 없는 듯 하루 해는 저물어 가고, 나는 오늘도 숙소 근처의 위구르족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생김새가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이란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긴 위구르족들은 대부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살기 때문에, 이 식당 이름도 ‘신장’ 어쩌구 하는 이름을 하고 있다. 차가운 맥주를 시켜놓고 앉아 글을 쓴다. 덥고 힘든 몸이 벌써 맥주 두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38도를 오르내리는 온도와 먼지 날리는 거리. 이틀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돌아 다녔으나, 힘든 기억뿐이다. 단지 더운 날씨 때문일까?
베이징 또한 대도시의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거기다 관광 제 1의 도시. 어제 명청조의 황제들이 살았던 거대한 궁성인 ‘자금성’을 걸으며, 수많은 관광객들과 빼곡이 깔려 있는 돌판의 열기 때문에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다행히 옆으로 꺽어 들어간 자금성의 한 구석에서 초록빛 나무들로 둘러싸인 정원을 발견하고는 그 그늘에 앉아 지친 몸을 쉴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가장 큰 공원인 ‘이화원’ 또한 내게는 힘든 하이킹 코스일뿐, 어떠한 감탄도 일으키지 못했다. ‘천단공원’ 구석진 곳 벤치 위에서의 휴식, 그것이 내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값진 경험이었다. 더운 한낮에 공원나무들에 물을 주는 아저씨들, 그리고 그 물에 갈증난 목과 손을 축이던 것.
남들이 좋다 칭찬하고 감탄해 하는 것들과 사람들이 진정으로 느끼고 감동하는 것과의 괴리, 편한 대도시의 숙소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뭔가 허전한 것,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언가 많은 것들로 꽉 차 있는 곳에선 마음 또한 움직일 틈이 없다. 그러나 비어 있는 곳, 그곳에선 마음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펴고 여유롭게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 빨리 대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고 싶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 이원극장에서 하는 ‘경극’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일이 하나 발생했다. 비좁은 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 후줄그레한 청년 하나가 음료수캔을 들고는 아이처럼 쩝쩝 마시고 있었다. 머리는 짧았지만 먼지가 묻어 흩뜨러지고, 눈동자는 촛점을 잃어 두리번대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좀 이상해서 비스듬히 쳐다보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연거퍼 재채기를 하면서 앞에 비좁게 마주앉은 사람들에게 입 안에 가득한 끈적한 액들을 죄다 퍼붓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깜짝 놀라 피하는 사이 연거퍼 두세 번 더 재채기를 퍼붓는다. 졸지에 얼굴과 팔에 파편이 튀긴 사람들은 그 청년에게 욕을 해대며 씩씩대고 있고, 뒤에 앉은 사람들은 그 모양이 웃긴지 깔깔대며 떠들어댄다.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라 음료수 깡통만 붙잡고 쩔쩔매고 있다. 그러나 깡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지 귀에다 대고 자꾸 흔들어 보더니 이윽고 그 안에서 가로 3센티, 세로 1센티 크기의 ‘金’이라고 적인 쇠토막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 노발대발하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차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쇠토막에 집중되었다. 짐작컨대 그것은 음료수 회사에서 판매전략으로 고안해 낸 거액의 당첨권인 듯했다. 갑자기 차 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당사자는 뭔지 몰라 멀뚱해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저희들끼리 야단이다. 청년도 뭔가 짐작한 듯, 사람들이 그 쇠토막을 구경하려고 손을 내밀어도 그것을 꼭 움켜쥐고는 마치 그것을 뺏길 것처럼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러자 차 맨 앞에 조용히 있던 한 사내가 지갑에서 거금 2000위엔(한화 약 30만원)을 꺼내 들고는 즉석에서 흥정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거금에 당황한 청년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얼른 돈을 받아 한 손에 꼭쥐고는 이내 자기의 쇠토막을 줘버린다. 쇠토막을 받아든 사내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버렸다. 차안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언성을 높여 거금을 받아쥔 그 청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추측컨대, ‘이 바보야, 넌 손해본 거야. 그게 얼마짜리 당첨권인데.’ 라고 말하는 듯했다. 청년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한 여자가 앞쪽으로 달려나오더니 청년의 손을 잡고는 뭐라 한참을 설득한다. 그러더니 청년과 함께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그리고는 아까 먼저 내린 사내가 간 방향으로 성급히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다시 그 사내를 따라가서 돈을 더 받아내던지, 아니면 다시 물리던지 할 심산이었나 보다. 함께 내린 여자 또한 열을 내고 있는 것을 보니, 떡값을 똑똑히 받아내려는 모양인 듯했다.
도심 한복판 비좁은 미니버스 안에서 벌어진 하나의 해프닝. 그러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뭔가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쇠토막을 꼭쥐고 누가 뺏어갈까 불안에 떨던 그 후줄그레한 청년,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싸우던 사람들의 모습, 기회를 놓치지 않고 쇠토막을 손에 쥔 노련한 사내, 거금을 손에 쥐고는 더 불안해져 버린 청년의 아이러니한 모습, 그리고 함께 내려 필사적으로 뛰어가던 여자의 뒷모습…. 나는 그 비좁은 미니버스 안의 풍경이, 마치 이 혼란한 세상의 은유인 듯하여 마음이 씁쓸했다.
베이징에서 ‘시안’으로 가는 14시간 쾌속열차, 경와칸(딱딱한 침대칸). 나는 지금 중국에서의 첫 열차를 타고 있다. 상 중 하로 분류된 침대칸 맨 윗쪽 상층에 누워 시안에 대한 안내책자들을 뒤적이다가 이내 잠에 들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풀 하나 없는 거대한 황토색 계곡에 내가 있었다. 계곡을 이리저리 걷고 있는데, 이쪽 언덕에 이상한 동물이 나타났다. 몸은 큰 사슴인데, 얼굴은 수염난 코끼리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긴 상아가 달려 있었다. 저쪽 언덕에도 같은 동물이 있었다. 내가 슬슬 피하며 다른 쪽으로 가자, 거기에서도 같은 동물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컹! 컹!’ 하는, 크게 터널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냈는데, 무섭기도 하지만, 그 소리엔 신의 음성 비슷한 것이 들어 있었다. 깨어보니 기차는 어둠 속에서 산을 달리고 있었고, 가끔 레일과 부딪히며 ‘컹! 컹!’ 소리를 냈다.

[시인]
(200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