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매미는 뭘 먹고 사는가 |김승강|

등나무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며 앉았다. 장마 끝이라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인데도 힘들었다. 어제 과음을 한 탓도 있다: 어제 저녁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술김에 담배도 여러 대 얻어 피웠다. 땀이 샘처럼 솟는다.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린다. 매미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아직 찬기가 남은 물을 배낭에서 꺼내 마시다 저쪽에 매미가 한 마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만져본다. 날개죽지를 잡은 손으로 힘이 느껴졌다. 힘이 애처롭다. 내 손아귀에서 무력하게 버둥거리는 매미의 날개의 힘: 이 작은 힘은 어디서 오는가. 매미를 살짝 놓아보았다. 제자리서 날개를 털 뿐 날지 못했다.
매미를 본격적으로 관찰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매미가 입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입이 없으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나는 계속해서 이리저리 매미 입을 찾았다. 없었다. 입이 없다니… 무릇 살아 있는 것들은 입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된 게 입이 없단 말인가. 결국 매미 입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들어갔다: 매미는 뭘 먹고 사는가. 한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떴다.

<과연 매미는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매미의 식생활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매미는 식생활 방식은 모기와 유사했다. 다만 대상이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라 나무라는 것만이 달랐다. 매미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머리 부위에 가느다란 대롱이 달려 있다. 평상시에 잡아서 손에 쥐면 그 대롱은 아래쪽으로 누워 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데 몸집만큼이나 조금 더 굵고 긴 빨대였다. 그것은 매미의 입이었다. 녀석은 바로 그 대롱을 나무줄기에 박아놓고 있었다. 나무줄기 깊숙이 박은 것 같지는 않고 대롱의 끝부분 3.4mm 박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예 그 대롱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의 움직임 때문에 대롱이 눈에 보였고 뭐하는 것인지를 대충 짐작하게 되었다. 녀석은 한곳에 대롱을 박아 놓고 한동안 있다가 대롱을 다시 빼냈다. 그리고는 줄기의 조금 위 부분으로 전진을 해서 그곳에 다시 대롱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나와 똑 같은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내심 실망했다. 입이 없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대단한 발견이고 대단한 일 아닌가. 내 기대는 깨지고 말았다. 지긋지긋한 식욕: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먹어야 하고 먹을 수밖에 없다! 과음 한 뒤라 식욕이 없어 그랬을까; 그러나 저녁때쯤이면 다시 회복할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식욕은 돌아올 것이다.

저녁이 되었다. 나는 며칠 전 보아두었던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KBS 일요일 저녁 프로그램 ‘스페셜’이었다. 제목이 ‘철까마귀의 날들’이었다. 방글라대시였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바닷가에 거대한 폐선들이 유령처럼 떠 있었다. 생명을 다해 해체작업을 위해 인양되어 온 배들이었다. 말하자면 거기는 배들의 공동묘지였다. 해체작업에 사용하는 공구는 산소용접기와 배를 육지로 좀 더 가까이 당기는 데 필요한 윈치가 전부였다. 절단공을 제외하고 모두 맨손과 맨발로 갯벌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절단공이 산소용접기로 배 위에서 한 부분을 절단해주면 아래 있는 작업자들은 절단된 철근뭉치를 여럿이 매고 뭍으로 옮겼다. 발이 펄 속으로 푹푹 빠졌다. 위험했다. 목숨을 걸어놓고 하는 일이었다. 일년에 작업자들이 이십 명씩 죽어나갔다. 오직 가만히 앉아 굶어 죽지 않으려고 일했다. 하루에 한 끼 구경하기도 힘든 가난한 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끼니를 위해 일을 찾아 모여들었다. 작업이 끝나면 짐승우리 같은 숙소로 돌아와 쌀을 씻고 밥을 해 먹었다. 술도 없고 여자도 없는 밤이었다. 숙소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작업장으로 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망울은 유난히 맑고 깊었다. 그래서 슬펐다. 한 형제가 있었다. 형은 산소용접기로 배에 올라가 절단작업을 했다. 형이 먼저 고향에서 올라와 자리를 잡은 뒤 동생을 불렀다. 동생도 형의 일을 배우고 있었다. 형은 절단작업을 하다 죽을 뻔 한 날 말했다: 고향에 아내가 있다. 며칠 전 아내에게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왔다. 그런데 아내는 임신 중에 잘 먹지 못해 아기가 눈이 멀어 태어났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는 섧게 울었다. 바로 그때였다. 사라졌던 내 식욕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자괴감에 서러웠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이 글을 썼다.

[시인]
(2009.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