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어떤 멸종 |최대환|

A: 볕 좋은 일요일인데, 오늘 어디 가?
B: 응, 오랜만에 교외에 나가보려고.
A: 우와, 괜찮은 계획인데. 누구랑, 가족들이랑?
B: 아니, 우리 식구 중에 나만 교외 나가잖아.
A: …?

비교적 절친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인데, 뭔가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 말을 할수록 서로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계속해서 들어보자.

A: 왜, 식구들이 교외를 싫어하나 보지?
B: 알잖아, 너무들 이성적이라 뭘 잘 믿으려 들어야 말이지.
A: 교외 나가는데 믿긴 뭘 믿어?
B: 그럼 교외를 놀러가? 믿으러 가지.
A: …?

이쯤 되면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느낌이 온다. 만약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모여서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뜻이 담긴 ‘교회’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해 보길. 그리고 평소 주위사람들이 이 말을 발음하는 것도 유심히 한번 들어보길. 허다한 사람들이 ‘교회’를 ‘도심 밖 가까운 주변’이라는 뜻이 담긴 ‘교외’로 발음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향’을 ‘영양’으로, ‘고향’을 ‘고양’으로 발음하는 사이, 나름의 독립된 음가를 지닌 자음인 ‘ㅎ’ 발음이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마치 생물체의 한 종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이러다간 오래지 않아 우리말의 생태계에서 ‘ㅎ’ 발음의 멸종을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보면 이렇다.

1. 소설의 출간이 작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2. 소설의 출간이 작년보다 배로 늘어났다.

‘배’는 위의 예 1에서처럼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일정한 수나 양이 그 수만큼 거듭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 2에서처럼 그 자체로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 즉 ‘갑절’이나 ‘곱절’이라는 뜻도 가진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두 배’ ‘세 배’ ‘네 배’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예 2의 뜻을 거의 살려 쓰지 않고 있다. 무슨 쓸 데 없는 걱정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러다간 머지않은 미래에 ‘배’라는 말이 오롯이 혼자서 쓰일 수 있는 의미는 영원히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또한 또 하나의 멸종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물들의 세계에서 한 종의 멸종은 곧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진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각 종들의 관계와 체계가 흐트러지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내뱉는 말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의 세계와 견주어지는 비유가 타당하다면, 어떤 발음이나 의미의 멸종이 가져올 생태계의 교란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 생각해 보자, ‘ㅎ’ 발음이 음가를 완전히 잃게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말들이 동음이의어로 전락하거나 특정한 의미를 잃고 버려지게 될지를 말이다.

신문사 기자를 하다 방송사로 옮겨 몇 해째를 지내고 있다. 방송에서 내뱉는 말들이 왕왕 말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내에 우리말연구회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게 됐다. 그 모임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나를 사로잡게 된 멸종 방지에 관한 생각을 짧은 글로 옮기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활 속 동참을 기대해본다.
[소설가]
(2009.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