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신작시] 봄밤 |이성복|

1

스승이 떠난 뒤 백 년이 흐르고
어떤 밤에는 강둑을 걸었다
강은 멀고 멀었다
달은 따라오지 않고
나도 달을 따라가지 않았다
달에 오르는 계단은 보이지 않고
내 날개엔 아직 솜털이 돋지 않았다
봄밤에 강둑에서 날갯짓 하면
달은 보지 마라!
스승의 말씀 귀에 쟁쟁하고
내 날개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강은 번번이 몸을 뒤챘다
달빛에 몸져눕는 물결이 은비늘처럼
고와도 달은 보지 않기로 했다

2

봄밤에 돌기도 구멍도 없는 강이
구렁이처럼 울었다
우는 강에게 젖을 줄 수 없어,
강의 이마에 오줌을 누었다
쉰을 훨씬 넘긴 내 몸에서
흐린 물이 흘러나왔다
백 년 전 스승의 이마에도
뜨거운 물방울이 튀겼을 것이다
멀리 달의 이마는 젖지 않았다
나는 달의 한가운데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 모가지에 섹스가 느껴졌고,
백 년 전 스승이 달아오른
밥솥처럼 비명을 질렀다
내 연애를 감시하던 스승이
먼저 사정해 버리신 것이었다
강둑의 풀들이 진저리 쳤다

3

그곳이 강이 끝나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콘크리트 제방에 부딪치고서야
알게 되었다 강은 나를 두고 흘러갔고
나는 강둑을 내려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아직도 달에 계시는 스승이
차창 사이로 언뜻언뜻 나를 보기도 했다
스승이 떠난 뒤 백 년이 흐른 봄밤이었다

(2009.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