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얼굴들 |신형철|

나의 얼굴

나의 얼굴을 내가 보는 두 가지 방법. 거울 보기와 사진 찍기. 애초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타인의 시점’에 서려고 해도 거울에 의한 반성(반영)에는 공범성(共犯性)이 존재”하는 데 반해, 사진은 거울과 달라서 “사진이 발명된 당시에 사진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녹음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금할 수 없었다.”(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물론 거울과 사진의 이 차이는 이제 거의 해소되었다. 필름 없이 수없이 되풀이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찍힌 사진의 편집까지 가능해졌으니까. 나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에 거울 앞을 떠나듯,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얻었을 때 사진 찍기는 끝난다. ‘잘 나온’ 사진이란 대개 ‘실제보다 잘 나온’ 사진이고 그러므로 ‘실제와는 좀 다른’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마지막 거울-사진을 믿는다. 나는 나의 얼굴과 공범이다.

너의 얼굴

어떻게 저 불온한 동맹을 파기할 수 있을까. 너의 얼굴 덕분에 가능하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나는 너의 얼굴에서 내가 보고 싶은 그것만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는 공범성이 아니라 타자성이 있다. “내 안에 있는 타자에 대한 관념을 뛰어넘어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우리는 그것을 얼굴이라고 부른다.”(『전체성과 무한』) 타자의 얼굴에는 사랑받는 얼굴과 고통받는 얼굴이 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우리는 전자의 수수께끼 앞에서 바람직한 무력감을, 후자의 요구 앞에서 윤리적 책임감을 느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레비나스의 말에 공감하는 데 늘 실패한다. 첫 번째 얼굴, 내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는 바람직한 무력감이 아니라 참혹한 고통을 안겨준다. 지옥의 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될 때 열린다. 나는 가해자가 되고 사랑은 파괴된다. 두 번째 얼굴, 고통받는 이의 얼굴은 과연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감정은 쉽게 외면된다. 너의 얼굴은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든다.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

그의 얼굴

대개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피해자의 얼굴이 아니라 가해자의 얼굴이다. 용산에서 6명이 죽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대다수가 강호순의 얼굴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굴 공개로 얻게 되는 ‘공익’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그가 향후 지속적으로 공중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알 권리’ 운운도 파파라치들의 궤변과 다를 바 없다. 징벌의 차원에서 얼굴을 공개하자는 논리는 법치주의에 위배될 뿐 아니라 살인자의 가족에게는 연좌제의 굴레가 될 수 있어 위험하다. 유사 범죄 예방 운운은 추단과 바람일 뿐이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성문법을 훼손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피해자의 인권이 문제가 된다면 살인자의 얼굴을 유족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겠거니와 본래 인권이란 서로 주고 뺏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호되어야 하는 것이어서 저 논리는 감상적이다. 예외를 허용하면 원칙은 파괴된다. 살인자가 아니라 인권 그 자체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연쇄살인자의 얼굴은 전쟁터가 되었고 그 전쟁에서 우리는 졌다.

우리의 얼굴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체로 설득력이 없다. 애초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공익과 피해자들을 거론하며 그 욕망을 논리화하려고 한다. 이는 거꾸로 그것이 매우 집요한 무의식적 욕망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왜 우리의 욕망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향하는가. 피해자의 얼굴은 ‘너의 얼굴’이고 그 얼굴은 나를 무의식적 가해자의 위치로 데려가서 나와 나의 얼굴의 동맹을 위협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우리가 범죄자의 끔찍하고 은밀한 쾌락의 찌꺼기를 무의식적으로 관음하게 하는 표면이 되어주면서도 우리를 끝내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은 그의 얼굴이 지극히 평범하거나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할 때 더 큰 만족을 얻는다. 그의 얼굴이 나의 얼굴과 위태로울 정도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 때문에, 그 근접성의 긴장감이 쾌락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 덕분에 너의 얼굴을 외면하면서 나의 얼굴을 지킬 수 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서로 엇비슷해진 우리, 그리고 ‘우리의 얼굴’이다. 앞으로 더 많은 얼굴이 공개될 것이다.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미래는 어쩔 수 있다. 벌어진 일과 벌어질 일 사이의 시간, 그때가 사유의 시간이다.
[비평가]
(2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