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진정한 ‘마라부’의 일 |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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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지낸 두 달 동안 나는 평소 꾸지 않던 스타일의 꿈들을 많이 꿨다. 콘크리트 바닥에 매트를 놓고 그 위에 그냥 붉은 시트 하나를 씌운 잠자리 탓도 있겠고 에어컨도 없는 더운 밤들을 늘 뒤척이며 잠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매일 먹었던 말라리아 약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 새로우면, 나는 꿈을 꾸는 동시에 그 꿈을 관람하게 된다. 꿈은 나를 연기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구경꾼으로 만든다.
돌아올 날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던 그날 밤도 나는 밤새 꿈을 꾸고 미운 사람들 생각하고 그들에게 해줄 말 퍼부을 욕 같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연습하면서 잠들었다 깼다 했다. 꿈속에서는 피리 부는 여인이 나왔다. 그리 예쁘지는 않았지만 개성이 있고 행동거지가 시원시원했다. 그녀에겐 분명히 남자친구를 포함한 일행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다 떠난 후에도 내 곁에 남아 있었다. 피리 부는 여인이 애인에게서 온 문자에 단순하게 ‘네’하고 답하면서 그 문자를 내게 보여준다. 나는 왠지 자신감에 휩싸여 더 예쁜 이모티콘 같은 걸 그 문자에 덧붙여 주려 한다. 그랬더니 피리 부는 여인은 필요 없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으로부터 나에 대한 애정을 읽으며 내심 만족스러워 한다. 그녀는 분명히 나를 좋아한다. 좋다. 새로운 애정의 시작일까… 기분좋아하고 있는데 잠이 깼다. 멀리서 쿠란 독경 소리가 길게 길게 울려퍼지는 걸 보니 새벽 4시 반쯤이겠다. 쿠란 독경 소리를 들으면 늘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벽 6시쯤 다시 잠들었다.
양 한 마리가 마당에서 밤새 ‘매에에~’ 하고 애절하게 울었다. 양은 마당의 나무에 매어 있었다. 새벽녘에는 목이 쉬어서 울음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아침나절에 칼 가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다. 나는 9시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어제 사 놓은 달걀을 들고 부엌에 갔다. 그릇에 물을 붓고 달걀을 넣은 뒤 버너에 불을 켜고 올려놓았다.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 아프리카 달걀은 금방 삶아지기 때문에 거의 끓자마자 불을 꺼야한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나무 둥치에 매어 있던 그 양이 이번에는 아무 표정도 없이 순순히 나무에 매달려 있다.
목에서는 피를 흘린다. 할리두와 기누가 열심히 양 가죽을 벗기고 있다. 꼭 옷 벗는 것처럼 죽은 양은 자기 가죽이 벗겨지는 걸 놔두고 있다. 가죽을 잘도 벗기는 두 사람이 능숙한 솜씨로 이번엔 내장과 부속을 긁어내고 있다. 그래도 양은 아무 표정도 없다. 이제는 아픔도 없는 그런 세상에 가서 저렇게 모든 걸 용서하고 자신의 몸이 꽤 넓은 이불 크기의 가죽과 붉은 고깃덩이로 변화하는 걸 허락한다.
나는 하얀 양의 주검과 칼을 든 산 사람들의 단호한 손놀림을 바라보며 퍽퍽하게 삶아진 달걀을 입에 넣는다. 밤새 배신당한 괴로움으로 몸부림친 나에게 양이 말한다. 그만하면 됐다고. 친구들을 용서하라고. 그래. 용서한다. 그러나 마지막 일주일 동안 더 많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나도 나를 지키고 이 사람들이 사람 밑으로 떨어지는 것도 막는다. 머리하러 갈 시간이 다가온다. 라스타!
할리두에게 무슨 경사라도 났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양을 잡아줬다고 하면서, “이게 마라부의 일이야!”라고 대답한다.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입가에는 특유의 미소가 머무른다.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설명할 때 아프리카 사람들은 종종 그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에는 남들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섞여 있다. 온화하고 순진하지만 약간 접근 불가능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미소이기도 하다. ‘마라부’라는 말은 진정한 무슬림이라는 뜻이다. 양을 잡는 일은 진정한 마라부의 일일 뿐이다. 마라부는 양처럼 무표정하게 양을 잡는다. 미워하지도 않고 잔인하게 굴지도 않는다. 오히려 양을 사랑한다. 그게 칼을 든 마라부의 숙명이다.
[시인, 뮤지션]
(200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