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서울 관광 |이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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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티투어버스 홈페이지에서>
서울 관광이라고 하면,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염려할 시골 사람, 그렇지 않으면 ‘Hi Seoul, Soul of Asia’ 같은 표어를 따라 온 외국인에게나 해당될 듯하지만, 시골 출신에 변두리 주민이긴 해도 어릴 때부터 30년 이상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 역시 가끔씩 서울 관광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관광 지도에 번호가 매겨진 곳 중에서 N타워는 겨우 올라가 봤지만 63빌딩은 근처에도 가 본 적 없고 한강 유람선도 못 타 봤으며 명동이나 동대문에서 쇼핑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남해안의 작은 도시에서 3년 남짓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외곽에 신도시를 짓고 있었고 시청도 그쪽으로 이전한다고 했으니, 지금은 그곳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런 규모의 것도 시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청을 중심으로 시가지를 돌아보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아무튼 “아무개 시내에 대해 아는 바를 서술하시오”라는 문제를 받는다면, 30년을 산 서울보다 3년을 산 그 도시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도시에 비해 서울은 너무 넓거나 혹은 너무 복잡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크기 복잡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담한 그 도시에서는 이런저런 곳들이, 가령 제일 맛있는 중국집이나 뷔페식당, 가장 세련된 맥주집이나 피자집, 패스트푸드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이나 도서관, 새로 생긴 피씨방이나 만화방 등이 모두 나를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음식점이나 영화관 따위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도 많고 많으며, 그중 몇 곳은 단골일 것이고, 또 조금만 수고하면 서울에서 제일 좋은 음식점이나 영화관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던 그곳의 느낌을 되살릴 수는 없다. 문득 그때의 포만감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지방의 중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 김애란이나 김미월로 하여금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날 때, 내게」(2005)나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2007) 같은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 작가들의 이력을 참고하자면 각각 서해안, 동해안의 작은 도시에서 상경했을 법한 주인공들은 재수를 하거나 직장에 다니면서 또 그렇게 서울에 눌러앉으면서 63빌딩이 굽어보고 있는 노량진, 빌딩숲이 즐비한 테헤란로를 매일같이 지나친다. 그런데 서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곳을 글자 그대로 지나치기만 할 뿐, 거기 있다는 느낌은 끝내 받지 못한다. 그 맞은편에 어떤 충만한 느낌의 장소들이, 또 그런 장소들이 모여 있던 작은 시가지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원광을 드리우고 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돌아가지 않는다. 하물며 고향인 사람들도 그곳에 있지 못하고 서울 거리를 지나치기만 할 뿐인데, 나 같이 잠깐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는 무리다. 그리고 실은, 내가 부러워했던 것 또한 남해안이나 서해안, 동해안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곳에 대한 포만감을 지우지 못하는, 그러나 서울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명한 장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쇼핑하고 밥 먹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는 관광이란, 이제는 도매급의 판매 상품이 되어 버린 여행 중에서도 그 속물적 취향에 있어 특히나 악명 높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관광이란 결국 지나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매일 서울을 관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없고, 지나치는 곳이 동시에 집이 된다. 김애란의 「큐티클」(2008)에서, 몇 년 전 노량진의 재수생이었을 주인공은 지금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 되어 ‘서울의 감미’를 익히며 유행을 따르기에 바쁘다. 그러나 어느 일요일,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명동역으로, 명동성당으로, N서울타워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정작 기대했던 럭셔리한 태국 여행 대신 싸구려 서울 관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뒤를 꼬리처럼 길게, 쉬지 않고 따라붙는, 드르륵드르륵 캐리어 바퀴 소리는 아마도 쉬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 바퀴 소리로부터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아무튼 나 역시 매일 서울을 관광한다. 관광 지도에 표시된 곳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평론가]
(2008.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