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김형중|

얼마 전부터 묘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신문을 들고 변기에 앉아 있을 때나, 잠시 책에서 눈을 거둔 무료한 시간에, 혹은 술에 취해 김광석의 노래나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집을 향할 때, 자꾸 똑같은 문구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나는 스스로를 여러 가지로 정의하곤 하지만(원래 인간에겐 일관성 따윈 없는 법이다), 이런 식의 이해 못할 현상 앞에서는 기꺼이 프로이트주의자가 된다. 『농담과 무의식』에서의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위에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하다못해 건망증이나 말 실수, 농담에도……. 그렇다면 그 문구들이 떠오르게 된 데는 분명 무의식적으로라도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찾아야 했다.
문구가 제법 그럴 듯해 보이는 걸로 미루어 내가 창작한 것은 아닌 듯하고, 아무래도 남이 쓴 문장의 한 구절이 아닌가 싶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언살 터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놀랍게도 그것은 내 기억에서 영영 사라졌던 시집 제목이었다. 1983년 청하판 송기원의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즉시 내 서가를 이 잡듯 뒤졌으나 그 시집은 종래 찾을 수 없었다.
시집 대신 기억이 돌아왔다. <황지>라는 모교 앞의 조그마한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잘 열리지 않는 미닫이문을 어떻게 어떻게 열고 들어가면 서가 한 편에 문지, 창비, 청사, 풀빛, 그리고 청하판 시집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지금은 선배의 부인이 된, 나보다 시를 잘 읽던 동기는 읽기 쉽고 힘차던 창비며 청사며 풀빛판 시집들보다 뭔가 여리고 섬세하고 난해하기만 했던 청하판 시들을 즐겨 읽었다. 그 중 한 권의 시집에 그 친구 손이 닿던 기억이 났고, 간지에 뭔가 끼적거려 내게 건네던 기억도 났다. 생일이었을까? 아니면 (선배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지만) 연서를 그렇게? 그 시집 제목이 아마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였던 듯싶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같은 제목의 시도 올라 있었다. 젊은 날의 송기원(그는 지금은 오히려 소설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 그랬듯, 어딘가 과장되고 감상적인 것이 지금의 눈으로는 썩 좋은 시처럼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시집은 무슨 이유로 20년의 세월을 뚫고 무의식으로부터 내 의식으로 귀환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의식이 무의식인 것은 그것이 억압과 방어의 대상이기 때문 아닐 것인가? 무언가 내 속에서 그 구절들을 불러냈겠지만, 그 이유까지 불러내는 데는 저항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찾아낸 이유가 없다고 해서 둘러댈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그러니까 그 책이 아직 여기저기 서점의 시집 코너(지금 따로 시집 코너가 있는 서점은 도대체 몇이나 될까?)에 꽂혀 있던 80년대 중반 즈음에, 내 또래의 젊은 자들(물론 모두는 아니었다)은 시를 가지고 놀았다. 시를 가지고 다퉜고, 시를 가지고 연애를 걸었고, 군에 간 동료에게 시집을 선물했다(군에 있던 어느 날, 지금의 내 아내는 시집을 가지고 나를 면회 온 적이 있었다. 김정환의 그 시집을 경기도 양평 어디 호숫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로 갔을까? 그 책, 그 시절들……).그러나 지금, 가을이고, 날은 좋고, 그늘은 시원하지만 가방 속에 시집 한 권 들고 다니는 젊은이를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인데도 말이다. 이제 그대 언 살이 터지고 곪아 썩어 문드러져도 시는 빛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시절이, 아마도 그 구절 하나를 두터운 세월의 켜를 뚫고 내 앞에 데려온 거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평론가]
(200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