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의지의 경로 |박형서|

비행기가 검은 구름을 뚫고 젖은 활주로에 내려앉는 순간 멀리 보이는 공항건물의 피뢰침에 새하얀 번개가 꽂히는 걸 보았다. 그 경이롭고 초월적인 경험은 나를 무척 감동시켰으며,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번개는 구름 중의 음전하와 지표면의 양전하가 만나는 현상인데, 대략 2초 안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질량이 없는 광자(빛의 매개입자)에 비해 전자의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이므로 빛보다는 느리지만 그 역시 코피가 날 정도의 속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미친 속도로 내려오다가 나뭇가지나 피뢰침처럼 뾰족한 곳(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지표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적은 면적을 차지하는 특정 지점)에 정확히 가 닿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번개의 경로를 보면 지그재그로 내려온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에, 그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내려오면서 여러 차례 방향을 틀어 피뢰침을 찾아가는 것인가?
이동 속도와 이동 시간에 미루어보았을 때 번개가 일단 발생한 후에 자기 목적지에 도착하기위한 결정을 수없이 내린다는 건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마찬가지로 피뢰침의 돌침부에 달린 구리 또는 용융아연도금을 한 철이 외부로 전기적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지표면 전체와 비교해서 매우 좁기에 피뢰침 자체가 번개를 향해 인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미 결정되어 있는 통로가 존재하는데, 번개는 다만 그 통로에, 그러니까 공기의 결이 전하가 흐르기 좋게 배치되는 찰나, 그 지그재그로 갈라진 틈새에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미리 결정되어 있는 통로, 이것이 바로 번개가 움직이거나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통로는 어떻게 미리 결정되어 있는가? 피뢰침이 구름에게 윙크를 하는가? 구름이 피뢰침에게 고함을 치는가? 둘 사이에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이 오가는가? 내가 추측하는 이에 대한 해석은 파인만의 이중슬롯실험에 대한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그러나 실험 결과를 오차 없이 설명해내는 널리 공인된 해석 – 발사된 광자는 이중슬롯 뒤쪽의 스크린에 부딪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전에 ‘모든’ 경로를 ‘동시’에 지난다 – 과 흡사한 점이 있다. 즉 에너지가 축적되어 번개가 생성되는 순간에 그 불안정한 구역에 속한 전하들은 구름과 지표면 사이의 가능한 모든 경로를 동시에 탐색하며,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줄기는 탐색에 어떤 방식으로든 성공한, 즉 자신의 음전하를 빼앗기고 무(無)로 돌아간 존재들에 대해 주어지는 일종의 시각적(혹은 광자적) 사후 보상인 것이다. 여기서 전하들이 양전하와의 접점을 찾아내는 방식은, 이 역시 기괴한 설명일 테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0’의 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아무런 시간이 걸리지 않으므로 실제 물리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과정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기존의 물리학에서 이런 현상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이 해석이 옳은지 확신할 수가 없다. 평소에 내가 하는 일이 죄다 그렇듯 이번에도 엉망진창으로 틀렸을 것이다. 다만 전의 문제로 돌아가서 번개의 경로가 미리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초고속으로 내려오는 와중에 정확히 피뢰침 쪽으로 방향을 잡는가 하는 질문에 한정해 말하자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추론이 옳을 확률이 월등히 높아 보인다. 좀더 편하게 말해서, 저 멀리 구름에서 발생한 벼락은 발생하는 순간 이미 저 아래 피뢰침과의 그 세세한 경로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발생한 벼락은 피뢰침과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이미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번개의 경로는 그 번개가 지나갈 길, 그리고 마침내 닿을 어떤 표적과의 ‘전하 대량교환 양해각서’가 체결된 후에 이루어지는 지극히 형식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개의 속도는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로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혹은, 그 경로에 스며들어 자신의 음전하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 속도와 이동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빛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우리가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온 빛으로 인해 특정한 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어왔다. 물론 우주 공간에서 빛이 스스로 기력이 딸려 소멸되지는 않는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또한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기인한 빛의 굴곡 현상, 즉 블랙홀처럼 질량이 매우 큰 존재로 인해 빛이 휘어 대부분의 별빛이 개별적으로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밤하늘이 온통 하얗게 밝지 않다는 것도, 덕분에 내 친구 성범수가 밤에 남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배회하며 못된 짓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반대, 다시 말해 블랙홀처럼 질량이 큰 존재가 경로 중에 없다면 과연 우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별빛을 관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으므로 가능해야겠지만, 이건 어딘가 이상하다. 왜냐하면 어느 별이 빠르게 확장되어가는 우주의 경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빛의 형태로 쏘아 올렸을 때, 또 블랙홀처럼 질량이 큰 존재에 가로막히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 경로는 직선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유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별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아무리 가느다란 줄기라도 무한하지는 않다. 간격이 극도로 좁다 하더라도 방출되는 광자 각각의 경로에는 극히 미세한 각도상의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이는 빛이 진행하면 할수록 그 각도가 넓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우주처럼 거대한 공간에서 그 빛이 수백억년을 달려왔다면 당연히 그 각도는 별에서 출발했을 때에 비해 대단히 커져야 하고, 간격은 넓어져야 하며, 따라서 그 별빛을 포착할 수 있는 장소가 유한하다는, 즉 어떤 장소에서는 포착되는 빛이 조금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는 포착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와야 옳다. 정리하자면 딱히 중력에 의한 빛의 휨 현상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점에서 외부로 발산되는 직선의 경로란 유한하므로, 특정한 지점을 빙글빙글 운행하는 우리 입장에서 모든 별의 빛을 관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앞서 내가 내린 주장, 즉 번개가 이동하는 경로는 마침내 맞닿을 존재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후에 결정되며, 그 결정 후에 번개가 발생한다는 가설은 빛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별에서 나온 광선을 본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 별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증거다. 빛 또한 아무 때나 무작위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빛이 발생하기 직전에 빛을 발생시키는 주체와 그 빛이 도달할 대상과의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 정확히 그 방향으로 쏘아 보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레이저 포인터로 판서하는 수학선생님 궁둥이를 쏠 때는 그렇다 쳐도 갓조차 달리지 않은 동그란 백열등이 그가 비출 방사형의 모든 사물과 미리 의논을 한단 말이야? 동시에, 한꺼번에?
그렇다, 조금 전에 파인만의 해석을 예로 들며 말했듯이 동시에, 한꺼번에 그런 짓을 한다. 그건 우리가 짧은 시간에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한껏 맵시를 뽐내며 교정을 지나가는 아리따운 여학생을 볼 때 먼저 얼굴을 보고 가슴을 보고 종아리를 보고 다시 가슴을 보고 허리를 보고 헤어스타일을 보고 또 가슴을 보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동시에 그 모든 걸 다 본다. 심지어는 그녀의 가방 색깔과 신발의 브랜드와 저 뒤에서 신세한탄을 해대며 걸어가는 모나리자 스타일의 추녀까지 동시에 본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볼 때 하나씩 차근차근 보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정체를 이용해 각각의 별에 초점을 맞추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별이 빛나는 밤하늘 전체를 본다. 암살자가 깍쟁이의 뒤통수를 쏘고 싶다고 해서 온통 뒤통수만 가득 차도록 조준경 배율을 조정하는가? 그렇지 않다. 때때로 특정한 존재의 본질은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만 파악될 수가 있으며, 이럴 경우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개개의 존재가 아니라 개개의 존재를 품고 있는 커다란 관계의 흐름이다. 암살자가 쏘려는 것은 (시간 차원을 포함해) 4차원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좌표를 바꾸어대는 ‘깍쟁이 짓을 하는 녀석의 뒤통수’이지 ‘뒤통수’ 자체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내부에서도 빛의 수용, 사물에 대한 인식의 과정은 동시에 그리고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조금 전으로 돌아가 동그란 백열등이 그가 방사형으로 비출 모든 사물들과 미리 의논을 한다는 점에는 그다지 모순이 없다. 다만 빛의 성질 중에는 반사라는 것도 있으므로, 실제로 백열등이 모든 사물들과 합의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반사로 인해 다른 사물들도 덩달아 빛에 노출되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번개를 비롯해 빛의 방출은 항상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하며 그 표적의 설정은 방출 직전에 쌍방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또 그 합의는 방출의 에너지가 임계점에 달하기 직전에 ‘0’의 시간 동안 진행되고 또 종료되는데, 이는 쌍방이 우주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있다 하더라도 합의에 필요한 시간은 ‘0’이라는 뜻이므로 속도의 개념을 넘어 ‘동시’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론 – 분열해 멀리 날아간 입자들의 스핀방향에 관한 사고실험에서 내려진 –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토라져서 신이 어쩌고 주사위가 어쩌고 하며 양자역학을 공격한 일화가 있다).
이러한 해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번개를 비롯해 빛의 방출이라는 흔하디흔한 자연 현상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강력한 의지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에너지를 남에게 전달하는 행위, 특정한 대상을 향한 선택, 양자간의 신중한 합의, 이런 모든 과정을 유발하는 저 강력한 의지 말이다.
그렇다면 빅뱅 후에 우리 은하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행성에서 발생한 빛줄기가 오랜 세월 끝에 지구에 도달해 허블망원경에 포착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 빛이 생성되어 방출되던 시각, 지구는커녕 태양계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 빛줄기는 도대체 어떤 놈이랑 합의를 했답시고 지구에 쳐들어오고 지랄이란 말인가?
사실, 그 광선의 목적지는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는 그저 난데없이 끼어든 불청객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번개가 칠 때, 하필이면 그 코스를 지나던 펠리컨의 뒤통수에 벼락이 꽂히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그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의식 있는 펠리컨의 지도자라면 이를 운수소관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열심히 의사를 교환하는 중간에 불쑥 끼어드는 펠리컨들의 오랜 습성에 비극의 원인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약속했던 번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자빠져 있는 저 아래 피뢰침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소설가]

(2008.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