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무덤, 옥수수, 죽음산업 |성윤석|

□ 무덤

그렇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국도가 있고 그 너머엔 논과 밭, 구거가 있고 그 위엔 수만기의 무덤들이 있다. 일상은 무덤과 컴퓨터를 번갈아 바라보는 일. 죽은 이의 묘적부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리고 현장으로 가는 길 위의 번다한 잡념. 저녁이면, 나 또한 그렇듯, 술과 돈만 밝히는 천박한 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덤을 파보면, 무덤의 연도가 10년이건 20년이건 무덤의 주인과 내가 동시간대 위에 나란히 놓인다. 무덤 속에서 치토만 나오든 뼈들이 고스란히 남았든 무덤의 주인이 살아 온 생과 내가 살고 있는 생이 동시간대 위에 놓여져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이자 소설가 존 스타인 벡이 <<코르테스 해 항해일지>>에서 그랬던가. 팽창하는 우주, 이들은 모두 시간이라는 고무줄로 묶여져 있다고. 그렇다면, 그 고무줄을 누군가가 풀어낸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은 시간대에 늘어서 있을 것인가. 죽은 이와 나와 미래의 아이들까지. 나는 급히 필름을 거꾸로 돌린다. 뼈에서 흙에서 나무뿌리에서 삽에서 다시 흙덩이로 잔디가 다 죽고 쑥부쟁이 천지인 봉분 하나가 다시 완성된다.
무덤과 나.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무덤 주위를 떠도는 생. 내 이리 될 줄 알았지. 그러지 않으면 이 곳에 오기 전까지 그 수만의 형체 뒤틀린 송장 얼굴들이 밤마다 내 꿈속을 휘 저었을 리 없었을 테니까. 나는 분명 길가메쉬도 아니고 바리데기도 아니다. 죽은 이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죽은 이는 내 발 밑에서 다시 찰라를 앞서 간다.
그렇다. 나는 무덤이나 파련다.

□ 옥수수 (indian corn maize)

로맹가리는 사내 마흔이면 모르는 게 없는 나이라고 말했다. 나는 마흔에 옥수수를 발견했다. 다섯 살 딸아이가 ‘미운 세살’이라 부르는 마흔 세 살에 와서도 나는 도무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영리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경험도 없었던 나는 마흔이 되자, 옥수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좁은 아파트 작은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생의 실패들이 형체를 띠고 낡아가거나 삭아가고 있었다. 바다 속의 골치덩어리 불가사리를 잡아다 역겨운 냄새를 참고 말린 뒤 도자기 굽는 가마에서 소성시킨 후 합성하여 이인산칼슘(DCP)를 만들던 시절의 흔적과 만들다가 만 출판, 그리고 두 권의 시집, 만들다 모조리 실패한 유골함의 재료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실패의 방정식을 내밀던 곳. 나는 그 방에서만 담배를 뻑뻑 피운다. 그 방에서 나는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난 로시난테를 타고 다시 옥수수를 들고 묘지로, 죽음의 골짜기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그리고는 옥수수 원료로 수목장 유골함을 만든다. 물론 여기까지 올 동안 전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옥수수에탄올로 아프리카의 빈민들이 굶어죽는데 먹는 음식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느냐,는 소리까지 듣는다. 나는 마지막 사업이라고 변명한다. 빨리 실패하기를 가족들은 바란다. 옥수수에탄올, 옥수수와이셔츠(옥수수 네 개면 셔츠 한 벌), 옥수수 젖병, 옥수수 장난감, 옥수수 식판, 옥수수그물. 나는 마흔에 겨우 옥수수 하나를 깊게 들여 봤다.

□ 죽음 산업

나에게 한지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말한다. “모든 방법을 다 전수할 테니까, 한지로도 유골함을 만들어 보세요.” 우리나라 죽음산업의 시장은 2조5천억. 일년 사망자 수가 25만명이니, 1인당 장례비 1천만원으로 계산한 수치다. 이 중에서 생분해 수목장 유골함 시장은 대략 50억 안팎이다. 죽음산업이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고 음지에서만 자라다 보니, 정확한 통계 수치가 불가능 한 게 이 바닥이다. 생이 팔리 듯 죽음도 팔려야 한다. 단 잘 팔려야 한다. 정확하고도 제대로 된 가격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죽음산업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 수출도 해야 한다. 양지로 나와서 국민들과 의논해야 한다. 나는 모깃소리로 말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들 등을 돌리고 앉았다. 영세하고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만으로 이 분야에선 자기야말로 최고라고 착각하는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미운 세살이다. 그래도 죽음산업은 매력 있다. 지구는 헛도는 게 아니다. 벌써 젊은 사람들도 많이 뛰어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서 여전히 비 내리는 공동묘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에 대한민국에서 딱 여섯 명만 알아주는 내 시(詩)가 있다. 나는 무엇을 보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향해 나는 출근한다.

* 시집으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동네>>와 <<공중 묘지>>가 있다.

(2008.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