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단상(斷想)들;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에 관한 |조하형|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는, 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커피잔속에서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맥주 캔을 따면 용출하기도 하고, 오후의 흐린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기도 한다, 그것은. 액체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글을 쓸 수 없을 때, 그때, 집 안을 가득 채운 채 코로, 입으로, 쏟아져 들어와 몸 안에서 파도치며 출렁거리기도 한다, 그것은.
모든 글쓰기의 강물들이 흘러드는 곳,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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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일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그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지독한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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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아침은 내가 처음 쓴 소설이다. 그 말은, 그 소설이, 나의 데뷔작이었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혹자는, 그 말을,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이란 걸 써서 출간했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듯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지독한 좌절의 시간을 견뎌야했고, 사유의 벽에 부딪쳐 미칠 것만 같던 순간을 통과해야했고, 어리석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번째 소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버겁다. 지금은 그래도, ‘체력’으로 커버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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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깨닫는 건, 보통 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에서이다. 그 넓은 모래사장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문득,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글쓰기의 암흑지대, 언어물리학적 무(無), 그런 개념들이 물질화된다면 이런 풍경이 나올 거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물비늘처럼 떠있던 광안대교의 불빛들이 꺼지고, 어둠의 일부를 잘라내던 해안도로의 카페들이 사라지고,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무엇을 쓰든, 어떻게 쓰든, 도달하는 곳은 언제나, 이곳,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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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심하게 친해진 것들, 색깔들 : 레종 블랙, 카스 레드(6.9% ‘고알코올’ 맥주),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그린 버스, ……그리고, 무채색의 젤리덩어리 같은 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
그 대신, 안색(顔色)이 낯설게 변해갔다.
글을 쓰기 전의 내 얼굴은 이렇지 않았다, 믿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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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계를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항상, 하나의 세계를 내어놓는 일이며, 재구축된 세계 속에서 재귀적으로 변형되는 일이다. 그 순환과정에서, 얼굴이 변형된다.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이 얼굴이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 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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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는 언어적 사막의 바다, 실서증(失書症)의 차가운 적도, 모순형용의 영토다 : 작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일에 관해 쓰려고 한다, 그러나, 쓰다보면 어느 순간 딜레마의 영토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해하는 일에 관해 쓰기 위해서는, 이해해야하지만, 이해한다면, 쓰지 않을 것이다, 쓸 수 없을 것이다, 쓴다 해도 ‘문학’이 아닐 것이다……. 말해질 수 없는 것, 씌어질 수 없는 것들이 진정으로 존재하며, 그것은 언제나, ‘문학이전’이거나 ‘문학이후’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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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불구하고문학을한다는 것, 그것은 딜레마의 영토에서 쓰는 것, 씌어질 수 없는 것을 써내는 역설의 작업이다. 작가는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에서 익사할 수도 있지만,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로 잠수할 때만 작가일 수 있다. 모든 글쓰기의 강물들은 항상 그 지점으로 돌아가 무화되지만, 또 항상 그 지점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 글쓰기의 무덤이면서 자궁인 곳.
말해질 수 있는 것, 씌어질 수 있는 것을 쓴다면, 문학이 왜 필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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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에서 서성거리는 일은, 내가 생각해도, 약간 미친 데가 있고, 오해받을 만하며, 스스로 초라해지는 일이고, 자청해서 박해받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아주 쓸쓸한 일이다. 나는 가끔, 몸을 숙이거나 쪼그리고 앉아, 네온을 반사하는 조개껍데기를 줍는 척하곤 했다. 그때, 파도에 떠밀려왔거나 썰물이 끌고 가지 못한, 문장의 파편들 몇 개를 줍곤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전부 잃어버렸고, 손바닥은 늘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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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를 깨뜨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작가역시 깨져야만 한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의지만으로는 안 되고, 운도 따라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몸에 무리가 된다. 그것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깨어진 몸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작가들에게 내려진 저주다. 우리는, 십중팔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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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에서 돌아올 때면, 나는 완전히 지쳐서, 아주 느리게 걸어야만 했다. 텅 빈 두 손에, 새벽2시와3시사이의바다를 담고, 발을 끌며 한 걸음, 그 지긋지긋한 공허를 흘릴까봐 조심하며, 발을 끌며 한 걸음, 아주 느리게 걸어야만 했다, 발을 끌며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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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와 3시 사이의 바다에서 서성거리는 내가 마음에 드는가?
나는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
[소설가]
(2008.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