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청둥오리 기르기 |이기성|

지금 나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려 하는 참이네.
일요일 그러니까 겨울의 이른 아침에 그녀는 홀로 일어나 집을 나선다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아침거리를 터벅터벅 걸어서 공원으로 간다네.
불룩한 주머니에서 바스락대는 봉지소리, 해는 벌써 떠서 구름 사이로 흐린 빛을 흘려보내고 있지만 공기는 아직 차갑고 거리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 당연히, 공원은 비어 있지. 추억을 우물거리며 느릿느릿 걷던 노인들도 풍선 쥐고 달려오는 애들도. 이런 아침 애들은 아직 따스한 이불 속에서 자신이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 해도 참, 아이들의 세계란… 애들이란 짓궂게 따라 따니는 개들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지. 아이들에게 그녀는 낯선 동물처럼 보이는 모양이야. 한번은 공원의 소로에서, 다섯 살쯤 된 여자애가 그녀를 보고 왈칵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지. 냉장고처럼 거대한 그녀의 몸피가 낯설고 끔찍한 공포로 느껴졌을 법도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빽빽 울어대고, 새끼 고양이를 괴롭히고, 사탕이 묻은 끈적한 손으로 책을 더럽히는 못된 애들이란…
백 킬로가 훌쩍 넘어버린 몸을 이끌고 그녀는 천천히 걷는다네. 한때 외국군대의 점령지였다가 공원으로 바뀐 지 오래, 숲은 제법 울창한 검은 빛을 이루고 있지. 검은 나뭇가지의 끝마다 얼어붙은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지. 그녀의 굵은 발목 아래로 안개가 천천히 내리고 있지. 잿빛의 기미가 얼룩처럼 눈밑에 깔리기 시작하지. 곧 시간은 거미줄처럼 해일처럼 그녀에게로 덮쳐오겠지. 그녀의 창문에도 붉은 꽃들이 떨어지는 밤이 있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계단을 다 올라왔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녀는 어떤 문 앞에 서 있었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두껍고 거대한, 맹목적인 문들.
웅덩이의 가장자리 과자를 손에 들고 천천히 휘파람을 불 듯 그녀는 속삭이지.
“이리와 이리와”
물을 가르며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지. 검은 녹색으로 덮인 둥글고 부드러운 가슴으로 얼음을 천천히 밀면서. 그녀의 손이 뿌려낸 과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들은 다시 무심 속으로 돌아가지. 이제 그녀는 빈 손.
“노래해 노래해”
빈손을 내밀고 어리석은 오리들이 다시 몰려들기를 기대하면서. 그녀의 부름이 그들 내부의 허기와 비밀을 일깨우길 바라면서. 오리들은 먼 곳의 겨울로부터 날아왔을 테지. 머나먼 땅의 냄새와 기억을 간직하고, 이 낡은 도시의 한 귀퉁이에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해. 먹이의 기미를 읽지 못한 오리들은 몸을 움츠리고 깃털 속에 고개를 파묻지. 고요한 오리들을 휘저어 보려는 듯 그녀는 초조하게 소리치지. 검은 연못의 살얼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마흔 살의 아침이고, 텅 빈 냉장고의 시간만이 기다리는 아침이야.
“춤춰봐 춤춰봐”
무거운 안개 속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지.
이제 지상의 모든 동물들이 깨어나 제 목소리를 찾아 울어댈 시간. 소란하고 쿵쾅거리며 대기를 채우는, 쿵쿵, 꿀꿀, 부엉부엉, 멍멍….. 참, 그해 겨울 그 도시에선 수백 년 전에 세워진 문 하나가 활활 타올랐지. 나무로 만든 그 문은 자신의 영혼을 불길에 맡긴 채 울부짖고, 마지막엔 검은 기왓장으로 변한 문의 영혼이 후두둑후두득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지.

[시인]
(2008.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