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어쩌면, 30년쯤 후에 |원종국|

1년쯤 전, 나는 내 첫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소설의 공간이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라는 믿음 같은 걸 가지고 있다. 하여 소설 쓰는 데 필요한 ‘특별한 무기들’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의 가능성을 찾아 색다른 공간들을 헤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미래 사회나 가상공간으로의 ‘마실’도 잦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 번은 미래로, 그 다음 번엔 현재나 과거로, 한 번은 가상공간으로, 그 다음 번엔 현실의 공간으로…… 지그재그로 날아다니며 소설을 구상하는 재미가 나쁘지 않았다.

7년쯤 전, 나는 내 방 한가운데에 치읓 자로 누워 이런 상상을 했다. 35억 년 전 어느 날,

달리는 태초의 바다를 보았다. 깊고, 차고, 한없이 맑은 물이었다. 아니, 붉거나 푸른 빛깔의 물질들이 온통 뒤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 태양은 지루하게 떠서 느릿느릿 호(弧)를 그렸고, 밤에는 달빛으로 가득한 물결이 끝 간 데 없이 흘렀다가 이내 고여들었다. 또 언젠가부터는 가끔씩 번개도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물은 바람을 머금은 채 속 깊은 배앓이를 해댔다. 후우 흐읍. 그리고 물속에 아주 조그마한 것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보일까 말까 한 것이. 두 손을 모아 떠올리자 손바닥의 지문들 사이로 꼬물꼬물 헤엄치는 움직임까지 느껴졌다. 더러는 뭉치기도 하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면서.

10년쯤 전, 나는 입 구(口) 자를 닮은 내 자취집 방 한켠에 누워 이런 습작을 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꾸만 속으로 곪아서 폭, 폭, 터졌다.

숯가마 속을 들여다보면서 언뜻 내가 생겨나던 순간을 기억한 거 같아요. 불꽃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아 붙는 것처럼. 참, 모질구나, 생명이란. 그게 어디든, 불붙을 나무만 있으면 ‘훅’ 하고 옮아 붙는구나.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그 나무가 다 탈 때까지, 정말 열심히 뜨겁구나. 다 타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 믿기지요? 내가 생기던 순간을 기억한다는 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햇빛은 8분 18초 전에 떠나온 것이라지. 빛의 속도로, 날아서. 피사체를 툭 튕긴 뒤에 내 눈으로 들어와 뇌신경을 간질였겠지, 곰실곰실. 그런데, 36년쯤 전, 나는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안구가 생기기도 전에, 이런 기억이 나의 세포와 세포 사이에서 깜빡깜빡 교신하는 걸 보았다. 물론 그 기억들이 빛의 속도로 반짝인 것은 아니었다. 인화지에 묻은 감광물질들이 검게 타오르는 것처럼 감질나게 더뎠을 것이다. 나는 그저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듯, 그 기억들을 담았을 뿐. 어쩌면, 30년쯤 후에, 그 교신 중 어느 하나가 내 기억 속에 불시착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별빛의 반짝임이 무한 공간의 우주를 떠돌다가 우연찮게 소행성에 가 닿은 것처럼.

내 집착은 미미한 것이다. 35억 년쯤 전, 보잘것없는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메탄 같은 것들이 물속에서 뒤척이다 우연찮게 깜빡이는 교신법을 배운 것처럼. 그러나 우연은 결과적으로 필연이라는 걸, 나는 안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기억과 상상 사이를 오가며 교신하는 깜빡임이, 어쩌면 35억 년쯤 후에 누군가의 기억을 아주 살짝, 감질나게 자극해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소설가]
(2008.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