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안녕, 코펜하겐 |김태용|

덴마크에 가야겠어. 내가 말했다. 덴마크에 뭐가 있지. 그가 물었다. 코펜하겐이 있지. 내가 대답했다. 코. 펜. 하. 겐. 그녀가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술은 남았지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 집에서 나와 차를 몰고 공항으로 갔다. 음주를 한 덕분에 더 빨리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덴마크로 가는 비행기 시간을 알아보았다. 덴마크에 정말 코펜하겐이 있을까. 블랙커피를 연이어 두 잔 마셨다. 나는 코, 펜, 하, 겐, 이라고 그녀를 생각하며 말했다. 옆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가 하품을 했다. 박하 냄새가 났다. 코펜하겐엔 뭐가 있지. 라고 그는 왜 더 이상 묻지 않았을까. 여자 핸드볼 선수팀 같은 무리들이 떠들고 있다. 핸드볼 선수와 사랑을 나누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칠리핫소스가 발라진 핫도그를 하나 먹었다.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공항 로비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나비안경을 쓰고 살색 스타킹을 신은 중년 여자가 검은 개를 끌고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코펜하겐은 콧물감기약 이름 같지 않나요. 검은 개를 끌고 가는 중년 여자에게 다가가 무턱대고 말을 건넨 다음 따귀를 한 대 맞는다면 이 아침이 이토록 초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 핸드볼 선수팀 같은 무리 중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을 대며 누구 아니냐고 한다. 당장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 상대의 기대를 지연시켜 실망을 좀 더 주기 위해 그런 듯 아닌 듯한 표정을 만들도록 애써 노력한다. 잠시 후 무리 중 하나가 얼굴이 빨개져 돌아간다. 나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주인공이 맞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녀는 술이 덜 깬 혹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왜, 라고 묻는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어디로, 언제, 왜, 라고 그녀는 그를 의식한 듯한 음성으로 말한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녹음된 소리처럼 감정을 절제하며 다시 묻는다. 자고 싶어. 난 몹시 피로해. 당신이 피로라는 것을 알아. 그녀가 소리친다. 나 역시 자고 싶어. 내가 말한다. 그리고 침묵.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그의 화난 목소리가 증폭이 되다 만 음악처럼 들린다. 나 역시. 어쩌면. 끝도 없지. 이젠. 도무지. 무엇도. 이유도. 실패. 너라고. 모든 게. 절망. 싫어. 증명할 수 없어. 중간 중간 그녀의 울음소리가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코러스처럼 들린다. 전화가 끊어진다. 배터리가 나갔다. 그녀는 왜 그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여자 핸드볼 선수팀 같은 무리들이 입국 수속을 한다. 핸드볼 선수와 어색하게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 뒤 깨고 나면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칠리핫소스가 발라진 핫도그를 하나 먹었다.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손목시계의 유리가 깨져 있었다. 시계를 풀어 의자에 올려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년사내가 나를 부르며 시계를 놓아두고 갔다고 말한다. 얼굴이 빨개진 나는 도망치듯 서둘러 공황 로비를 떠났다. 나비 안경을 쓰고 살색 스타킹을 신은 중년 여자가 검은 개를 끌고 지나간다. 검은 개가 나를 보며 컹컹 찢는다. 아니 어쩌면 그 소리는 ‘텅텅’이었는지 모른다. ‘텅텅’인지 ‘컹컹’인지 모를 개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개소리는 더 이상 개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 개소리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개소리가 더 지독한 개소리 같이 들린다. 차문을 닫자 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개소리보다 요란한 진공의 소음이 감각을 흔들어 놓고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콧물이 나온다. 코를 훌쩍거린 뒤 콧물이 나오기 전에 미리 코를 훌쩍거린다. 코를 훌쩍거리자 콧물이 나왔다. 시동은 잘 걸리지 않았다. 두통이 일었다. 캐비닛을 열어 그녀가 먹다 둔 생리통 약 두 알을 씹어 먹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와 그녀는 잠들어 있다. 준비한 연장으로 그와 그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심장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코, 펜, 하, 겐, 처럼 들렸다. 거리에서 빨간색 털모자를 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12월이었다.
[소설가]
(200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