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사요나라 까마귀 -kujii to straw |황병승|

야마노테 선 시부야 행 전차가 운행을 잠시 중단하고 정차해 있다. 승강장 전광판에는 ‘인신사고’라는 문구가 흐른다. 누군가 선로를 향해 뛰어들었다는 뜻이다. 승객들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책을 읽거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보며 전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부야, 하라주쿠, 오모테산도를 이으면 찌그러진 삼각형이 된다. 우리가 완벽한 도형으로 알고 있는 삼각형이 이곳에서는 보기 좋게 찌그러져 있다. 골든 위크가 되면 이 찌그러진 삼각형 안으로 앙앙이나 논노에서 보았던 화려한 옷차림의 패션피플들이 몰려든다.

동경 도청 전망대에 올라 동경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높은 건물을 짓고 그 위에 올라가 낮은 건물들과 도로, 멀리 내다보이는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떠들게 된 것일까. 러시아인,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할 것 없이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주택가 골목. 상점들은 모두 일찍 문을 닫고, 반찬가게의 살찐 고양이 한마리가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290엔을 주고 산 싸구려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닛뽀리 역 주변을 거닐었다. 역사 뒤편에는 영문 모를 작은 무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두 명의 양복쟁이가 느긋한 걸음으로 그 곁을 지나고 있다.

일본은 지진에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흔들리는 집’을 짓는다. 잠자리에 들면 침대가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창밖으로는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들. 전차의 운행이 중단되는 시간에는 대형 트럭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어둠 속에 누워 소음에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힘이 건물의 뼈대를 흔드는 듯한 망상에 사로잡힌다. 이곳의 아이들은 매년 예고되는 대지진의 이야기 들으며 어른이 되고 늙어가겠지.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를 까마귀들이 몰려다닌다.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 위에 파란 그물을 씌우기 시작했고, 그 후로 까마귀들이 과자 봉지를 든 공원의 소녀를 습격했다는 얘기며 열차에 뛰어든 사람의 시체에 달려들었다는 얘기들. 커다란 비닐 백을 든 홈리스가 까마귀들이 포기하고 날아간 쓰레기 그물을 들추고 있다.

쉴 겸, 가게 한 귀퉁이에 앉아 라멘에 먹다 남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노라니 왠지 비참한 인생을 견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게를 나와 가부키초까지 걸었다. 이곳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고멘네, 아리가또, 시카시 같은 말들을 반복하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주르르 콧물이 흐른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런 후줄근한 순간에 머리 위를 지나가는 까마귀들. 까아악, 사요나라다.
[시인]
(200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