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저항과 항력 |최하연|

목 뒷덜미부터 발목까지 한통속으로 뽑은 지 한 달 지난 가래떡처럼 굳어버려 도무지 몸을 가눌 수 없을 때 생각한다. 운동부족이군.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준규가 아마추어 축구선수라는 것은 준규를 아는 사람이면 다 안다. 준규 정도의 공력이 되어야 햇빛 눈부신 사막 한가운데서 방금 이별당한 것 같은 시를 쓰면서도 주말이면 발목의 스냅을 이용해 수비수 두어 명을 따돌리고는 치타 뒷다리 같은 장단지의 회전력을 이용해 골네트를 흔들 수 있는 것일까. 내심 그가 부럽지만 어리바리를 모토로 삼은 후부터 나의 광장공포증은 좀처럼 가실 줄 모른다. 그래서 평소 요가를 하신다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 선생님을 떠올리며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점찍은 것이 수영이었다. 집에서 출발해 담배 두어 모금을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면 도착하는 곳에 수영장이 있었기에 결국 인프라 탓이기도 했다. 머리부터 수영장 바닥을 향해 던져 넣고 이십오 미터 이쪽저쪽을 여덟 번 오가고 나면 잠시 쉰다. 속도가 두 배 빨라지면 저항은 네 배 커진다. 속도가 느려진다고 저항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항력을 이기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항력은 그 제곱으로 커진다. 모든 관계는 저항을 유발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선 미꾸라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강습은 받지 않고 이름도 그럴싸한 자유수영 쿠폰을 이용하는 동안 인터넷을 뒤져 온갖 최신 수영법을 다운받아 스스로 시범조교가 되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근육이 단단해지면 물에 더 잘 가라앉는다. 물보다 가벼운 지방을 많이 가진 사람은 물에 잘 뜬다. 뜨기 위해 들이는 힘을 몸을 이동시키는 데 쓸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수영법의 체득 여부와 상관없이 부드럽게 나아간다. 레인 밖으로까지 물을 튀기며 수영장 소음의 8할을 생산해내는 이들은 물론 아저씨들이다. 첨벙거리는 것은 의욕이라기보다 평범한 물리 현상일 뿐이다. 있는 힘을 다해 물 바깥의 공기를 물 안으로 밀어 넣는 동작은 운동에너지를 소리에너지로 전환시킬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원하는 만큼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물살을 가른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거짓이다. 물살은 물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저항의 결과물일 뿐이다. 어느 나라의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이 유수(流水)풀에서 훈련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나는 이 사실을 확인했다. 수영 속도만큼의 물살을 어항 속에 흐르게 하고 선수는 그 안에서 뒤로 밀려나지 않고 제자리에 있기 위해 전력을 다해 헤엄쳐야 하는 훈련이다. 다람쥐처럼 말이다. 거실의 장식용으로 어항 속에서 수영해드립니다 하는 아르바이트는 어떨까. 지금의 나라면 오 분 일하고 오십 분은 쉬어야 한다. 아마도 시급을 받을 수 없지 싶다. 바람에도 결이 있듯이 물에도 결이 있다. 물에서 노닐고 싶다면 물의 결을 익혀야 한다. 인간은 수영법을 진화시키고 있는 유일한 포유류다. 현재 수영장에서 유통되는 온갖 수영법은 이성의 결과물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인간은 특별한 재해를 만나지 않고도 어처구니없게 물에 빠져 죽은 유일한 포유류다. 잘 알려진 대로 그것은 공포 때문인데 공포는 이성과 배 다른 형제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 누구라도 갑작스럽게 물에 빠졌을 때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바로 그 연인의 품에 안겨 있는 순간을 상상하거나 가장 편안한 자세로 방뇨하는 기분을 떠올리면 무사할 수 있다. 근육의 수축이 풀어져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몸은 물에 뜬다. 물이 몸을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몸을 천천히 돌려 물에 누워 하늘을 보고 구름을 세다 보면 누군가 구해줄 것이다. 허둥대면 죽는다. 진화하고 있는 수영법의 에센스는 의외로 간단하다. 몸을 좁고 길게 만들어 물의 결과 결 사이를 우아하고 부드럽게 통과하면 된다. 체력이나 각종 기능성 동작들은 나중 문제다. 몸에는 깎아낼 곳이 많고 또 날마다 생겨난다. 몸의 모든 목들이 그중 하나다. 발목 손목 허리 목 어깨의 휘어지는 각이 적을수록 저항은 늘어난다. 나는 몰라도 물은 알고 있다. 그래서 수영 전에 미리 온갖 기괴한 자세로 몸을 찢거나 늘인다. 수영장에서 폭주하고 싶다면 영법이 아니라 체형에 맞는 포지션을 선택하면 된다. 올림픽에서 겨루는 네 가지 영법은 모두 긴 몸의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반대로 짧은 몸은 물 속에서 유리하다. 잠수함이 몽당연필처럼 생긴 이유는 그게 빠르기 때문이다. 허리 날씬한 물고기가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물아일체는 물을 세 번 거푸 먹고 나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처음 두 번은 스스로 화를 내지만 화를 내봐도 결국 열역학법칙에 의해 화는 냉수 속으로 사라지고 몸은 일제히 돋아나는 소름에게 점령당한다. 모든 여가가 그렇지만 나르시시즘이 없다면 계속 수영을 해나가기 힘들다. 수영장 바닥에 비친 몸의 물그림자는 몸의 경계에 대한 감수성을 갱신하는데 도움이 된다. 누군가 한여름 냇가에서 헤엄을 치다가 강바닥에 비친 자신의 물그림자를 보고는 곤이 변해 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나르시시즘이 불러오는 가장 큰 거짓말은 잠시 내가 포유류임을 잊는다 하는 것이다. 생물계 질서 이전의 상상세계 같은 것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몇 맥박의 숨을 참은 방금 전의 순간까지 선을 하나 긋고 나서 물그림자를 둥글게 말아 턴을 한다. 얼마간의 허공을 길게 미끄러져 나가는 동안 지하철에서처럼 잠시 졸고 가끔 꿈도 꿀 수 있다.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들이 여덟 번쯤 반복되면 여지없이 현실계인 직립으로 돌아와야 한다. 좀더 수영을 하고 수족관 아르바이트에 자신감을 붙으면 새로운 인테리어 상품으로 시인이 수족관에서 수영해드립니다 하는 광고를 낼 생각이다. 설치비는 별도고 첫 고객 이용료는 무료다.

[시인]
(2007.9.30)